일본 도쿄의 최대 번화가인 시부야에서 남쪽 다이칸야마 방향으로 잠시 걷다 보면 높은 빌딩 사이로 30층 높이는 돼 보이는 타워 형태의 하얀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언뜻 관광 전망대나 전파 송신탑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 건물은 다름 아닌 시부야구 청소공장의 굴뚝이다. 청소공장은 일본에서 쓰레기 소각장을 지칭하는 단어다. 동행했던 현지 지인은 “소각장과 연결된 지하 전용도로로 쓰레기 트럭들이 다닌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이 주변에서 쓰레기차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 한가운데 그것도 대표적인 부촌 주택가와 맞닿아 있는 곳에 소각장이 들어선 게 인상적이었다.

하루 1000t 쓰레기 갈 곳 없어져

불현듯 5년 전 개인 여행 때 기억이 떠오른 건 서울 내 신규 소각장(자원회수시설) 건립을 놓고 3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는 서울시와 마포구의 갈등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8월 입지선정위원회 회의 결과를 토대로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750t 규모(하루평균 처리 용량) 소각장 옆에 1000t 규모 소각장을 추가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마포구는 “이미 소각장이 있는 상암동에 또 소각장을 짓는 것은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며 행정소송까지 불사할 태세다. 서울시는 원칙에 따라 남은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쓰레기 문제는 심각하다. 쓰레기는 재활용하지 않으면 땅에 묻거나 태워야 한다. 부지 확보가 필요한 매립 확대보다 소각 물량을 늘려 매립량 자체를 최소화하는 게 효율적이다. 더구나 지난해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3년 뒤인 2026년부터는 수도권 매립지의 생활폐기물(종량제 봉투 쓰레기) 직매립이 금지된다. 현재 강남·양천·노원·마포구에 있는 4개 쓰레기 소각장의 하루 처리 용량은 2200t이다. 매일 서울 전역에서 쏟아지는 3200t의 생활 폐기물을 감당하기 역부족이다. 나머지 1000t은 그대로 수도권 매립지에 묻힌다. 3년 뒤면 이 1000t의 쓰레기가 직매립 제한에 걸려 갈 곳이 사라지게 된다. 서울시가 소각장 시설 확충을 서두르는 이유다.

정치적 유불리 따질 시간 없어

하지만 서울시와 마포구의 갈등에서 보듯 신규 소각장 설치는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소각장=혐오시설’이란 인식이 퍼져있는 데다 “다른 지역 쓰레기를 왜 여기서 처리하나”라는 자치구 간 미묘한 감정 대립도 무시 못 한다. 마포구 외에 양천·노원·강남구 등 3개 소각장도 가동된 지 20년이 훌쩍 넘은 노후 시설이다. 수년 내 처리용량 확대와 시설 교체가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마포구와 같은 반발 사태가 차례차례 재연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소각장 문제를 풀 열쇠는 결국 설득과 확실한 인센티브 보상뿐이다. 첨단 건축 기술을 동원해 소각장을 관광 랜드마크로 탈바꿈시킨 유럽 국가들은 좋은 본보기 사례다. 서울시 혼자 풀지 못할 문제라면 중앙정부가 나서 힘을 실어줘야 한다. 경계해야 할 건 쓰레기 문제를 정치 논리로 접근하는 후진적 행태다. 6·1 지방선거에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적잖은 단체장들이 소각장 이전·폐쇄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한가롭게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엔 쓰레기 대란 위기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