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한국은행이 24일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 베이비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밟은 건 인플레이션이 여전한 가운데서도 경기침체 우려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때 1400원대로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이 상대적으로 안정 국면에 접어든 반면 수출 둔화와 자금시장 경색 등 불안 요인이 커진 점도 한은이 긴축 속도 조절에 나선 요인이다.

자금 경색·경기 둔화 고려

이창용 "경기 둔화"…금통위 6명 중 5명 "금리 종점 年3.5~3.75%"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경기 둔화 폭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됨에도 불구하고 물가 전망치의 하향 조정 폭은 크지 않다”며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한 배경을 밝혔다. 이 총재는 “11월의 경우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의 기저효과 등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월보다 상당 폭 낮아질 수 있다”면서도 “전기·가스요금이 추가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5% 수준의 높은 오름세가 내년 초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10월 금통위 때와 달리 금리 인상 폭을 줄인 데 대해선 “외환 부문의 리스크(위험)가 완화되고 단기금융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이 제약되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월 22일 한·미 금리 역전 이후 1439원90전까지 치솟았다. 한은이 지난달 금통위에서 빅스텝을 밟은 주요 요인 중 하나도 환율이었다. 하지만 이달 들어선 환율이 고점 대비 100원가량 떨어졌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 속도 조절 가능성에다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완화 기대감이 작용하면서다.

외환시장은 비교적 안정됐지만, 국내 자금시장 불안이 통화정책의 변수로 떠올랐다. 금리 인상 과정에서 시장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지만,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면서 단기자금시장이 경색됐다는 게 한은 판단이다. 이 총재는 “불필요하고 과도한 신뢰 상실이 생기면서부터 시장금리가 기준금리가 올라가는 것 이상으로 급격하게 올라가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필요하면 한은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금리 인상 기조는 “당분간”

세계 경제가 둔화하고 한국 경제 성장이 더뎌지면서 향후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대폭 인상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총재는 “소비가 회복 흐름을 이어갔지만, 수출은 주요국의 성장세 약화로 10월 들어 감소로 전환하는 등 빠르게 둔화하고 있다”며 “내년 성장률은 수출과 투자가 예상보다 부진하고 소비 회복세도 완만해지면서 지난 전망치 2.1%를 상당폭 밑도는 1.7%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날 금통위 통화정책 방향 의결문에도 ‘둔화’라는 단어가 여덟 번 언급됐다. ‘물가’는 일곱 번 쓰였다. 직전 금통위 의결문에선 둔화가 여섯 번, 물가가 여덟 번이었다.

금통위원 6명 중 5명은 최종금리 수준이 연 3.5~3.75%가 될 것으로 봤다. 신성환·서영경·박기영 위원으로 추정되는 3명은 연 3.5%를, 조윤제·이승헌 위원으로 보이는 2명은 연 3.75%로 최종금리 수준을 전망했다. 주상영 위원으로 추정되는 한 위원은 현재 연 3.25%에서 금리 인상을 멈춰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날 금통위 의결문에 “당분간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나온 부분도 주목받았다. ‘당분간’이란 표현은 이전 의결문엔 없었다. 이 총재는 ‘당분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는 말에 “3개월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