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과 SK온이 미국에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기로 한 것은 급성장하는 현지 전기차 시장을 적극 공략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폐쇄적인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시장인 미국은 연간 1500만 대의 신차가 팔리지만 전기차 비중은 약 7%에 불과하다. 20% 이상인 중국, 15%가량인 유럽에 비해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분류된다. 미국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글로벌 3위 완성차 업체로 발돋움한 현대차그룹으로선 현지 전기차 시장은 반드시 잡아야 할 곳이다.
여기에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강력한 시장 육성 정책을 펴면서 미국의 전기차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두 회사는 2026년 1분기 배터리 공장 가동을 통해 보조금 요건을 충족하고 전기차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겠다는 계산이다.

현대차그룹과 SK온은 지난 5월부터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을 위해 협상해왔다. 당초 3분기까지 논의를 마치기로 했으나, 지분율 문제를 놓고 두 회사가 이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글로벌 인플레이션, 기준금리 인상으로 SK온이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 과정에서 난항을 겪으며 협상이 지지부진해졌다.

▶본지 5월 13일자 A11면 참조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8월 17일 IRA를 전격 시행하면서 현지 배터리 공급망 확보가 시급해졌다. 협상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두 회사에 형성됐다. 게다가 자금난에 시달리는 SK온으로선 IRA로 내년부터 ㎾h당 35달러(배터리 셀 기준)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협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세액공제로 아낀 금액을 추가 투자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온은 신설 공장에서 파우치형 하이니켈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현대차그룹은 SK온이 제조한 파우치형 배터리를 대부분 전기차 모델에 적용해왔다.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 최근 출시한 전기 세단 아이오닉 6, 2024년 생산할 아이오닉 7에 모두 SK온 배터리가 쓰인다. 기아의 EV6와 EV9(내년 4월 출시),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에서 다음달부터 생산할 제네시스 GV70 전기차도 SK온 배터리를 장착한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합작과 별개로 LG에너지솔루션과도 합작공장 건설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온과의 합작 공장 규모인 연 20GWh는 조지아 신공장에 필요한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정도여서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기아 조지아 공장도 전기차 생산을 위해 라인을 전환하고 있어 추가적인 배터리 공급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대차그룹 외에도 최근 스텔란티스, 제너럴모터스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두 개 이상의 배터리 업체와 합작을 추진하는 등 ‘세컨드 벤더(보조 공급사)’ 찾기에 혈안이 됐다. 현대차그룹은 코나와 니로 전기차에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쓰고 있어 협력에 기술적 문제는 없는 상황이다.

김형규/김일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