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박물관, 의친왕 다룬 특별전 열려…"나라 위한 처절한 몸부림 기억했으면"
"조선의 마지막을 이야기할 때 고종, 순종, 영친왕까지는 떠올리지만, 의친왕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재조명하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조효숙 경운박물관장은 의친왕 이강(1877∼1955)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작은 변화가 하나둘 쌓이면 역사적 인식을 바로잡는 큰 물결이 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재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의친왕과 황실의 독립운동, 기록과 기억' 특별전은 의친왕의 업적을 소개하고 그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면모를 보여주는 전시다.

왕자인 의화군 시절부터 의친왕 책봉, 미국 유학,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까지 의친왕의 생애와 활동을 엿볼 수 있는 사진, 의궤 등 유물 120여 점을 선보인다.

사단법인 의친왕기념사업회와 함께한 전시는 국내에서 의친왕을 다룬 첫 전시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 강남구 경기여고 100주년기념관 내 박물관에서 만난 조 관장은 "복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박물관이지만 의친왕비의 원삼, 당의, 화관 등을 소장하고 있기에 의미가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조 관장은 "이번 전시는 의친왕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라며 "나라를 빼앗기는 아픔 속에 당시 황실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다시 들여다보면서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자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의친왕가의 종손인 이준 의친왕기념사업회장 역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회장은 "의친왕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가 나라를 잃고 술과 기생에 빠져 '파락호'(破落戶·재산이나 세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서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을 이르는 말) 생활을 한 왕자라는 것이지만 나라를 빼앗긴 뒤 왕실이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의친왕은 황족 가운데 항일 투쟁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는 1919년 항일 독립투사들과 접촉해 상하이(上海) 임시정부로의 탈출을 모의하다 발각돼 강제 송환된 바 있다.

이후 의친왕 부부는 수년간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은 "고종의 직속 정보기관이었던 '제국익문사'(帝國益聞社) 조직을 이어받아 비밀리에 황실 독립운동의 중심이 된 분이 의친왕"이라며 "나라를 구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꼭 추천하는 전시"라며 "젊은 세대에는 익숙지 않은 대한제국의 의미, 그리고 황실에서도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의친왕기념사업회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의친왕을 재조명하는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의친왕과 황실의 독립운동, 또 황실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전시를 제주, 부산, 청주 등에서 하려고 한다.

나아가서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황실의 문화를 재정립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 관장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의친왕 관련 주제를 어떻게 더 확산할지 함께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2003년 문을 연 경운박물관은 내년 4월이면 개관 20주년을 맞는다.

고등학교 동문이 모여 박물관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소장품이 600여 점에 불과했지만, 어느새 1만2천여 점으로 20배나 늘었나.

자원봉사를 하며 학예사 자격증을 딴 사람도 5명이나 된다.

내년에는 가상현실(VR)을 활용한 버추얼(가상) 전시도 검토 중이다.

조 관장은 "경기여고 안이 아니라 많은 사람과 함께 아름다운 문화를 이끌어가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며 "작지만 깊이 있는 우리 박물관 같은 곳이 더 늘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