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난민 구조선 ‘오션 바이킹’은 난민 234명을 태운 채 3주 동안 이탈리아 해상에 표류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달부터 난민 구조선 4척의 입항을 거부했다. 대신 문을 열어준 나라는 프랑스였다. 제랄드 다르마냉 프랑스 내무부 장관은 “부끄러운 짓을 했다”며 이탈리아를 비판했다.
유럽의 딜레마…난민 막으면 인구절벽 올수도
이번 사태는 난민, 즉 이민을 둘러싼 유럽 내 갈등을 잘 보여주는 예다. 난민에 반대하는 극우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유럽 인구 측면에서 이민의 역할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반(反)이민 정서가 유럽의 인구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다.

유럽 인구 감소 막은 이민

프랑스로부터 비판을 받은 이탈리아도 할 말은 있다.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오는 난민에게 이탈리아는 가장 가까운 유럽 국가다. 올해만 이민자 9만여 명을 수용했지만, 유럽연합(EU) 회원국은 부담을 나눠 지지 않았다.

유럽은 2012년부터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넘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그러나 EU 통계청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인구가 실제 감소한 것은 2020년부터다. EU 인구는 2019년 초 4억4732만 명으로 고점을 찍고 지난해 말 4억4682만 명으로 2년간 약 50만 명 줄었다.

이민은 급격한 인구 감소를 막는 완충재 역할을 했다. 2020년과 지난해 순 이민자 수(EU로 유입된 이민자 수-EU를 떠난 이민자 수)는 각각 100만 명에 달했다. 유로스타트는 “이민자가 없었다면 2019년에만 EU 인구가 50만 명 줄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지난 25일 EU 집행위원회가 내놓은 이민자 대처 방안에는 강력한 이민 통제 조항이 포함됐다. 북아프리카 사람들의 탈출 자체를 막기 위해 제3국과 협력하는 조치다.

올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난민 수가 급증하면서 유럽의 난민 수용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유럽으로 피신한 우크라이나 시민은 480만 명에 달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북아프리카에서도 식량위기가 심화되며 난민이 속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EU와 노르웨이, 스위스 등에 접수된 망명 신청은 약 58만 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약 60% 늘었다”고 보도했다.

극우 득세에 반이민 확산

시리아 내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이주민은 급증했고, 에너지난과 고물가에 시달리는 EU 국가는 이들을 수용할 여력이 부족하다. 소수파였던 극우 정당은 반이민을 내걸고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반이민 정책 때문에 인구 감소라는 복병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오션 바이킹호 사건의 주역은 지난달 이탈리아에서 100년 만에 탄생한 극우 성향 총리 조르자 멜로니다. 멜로니는 ‘“이민자들을 돌려보내고 구조선을 침몰시켜야 한다”는 발언까지 했다.

9월 스웨덴에서는 극우 성향의 스웨덴민주당이 포함된 우파연합이 권력을 잡았다. 스웨덴은 독일과 함께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나라로 전체 인구의 20%가 이민자다. 그러나 선거 직전 발생한 갱단 총격 사건의 용의자가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밝혀져 반이민 정서가 폭발했다. 인도 이민자 가정 출신인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이민자를 막고 있다. 지난 14일 영국은 프랑스에 순찰비 7220만유로(약 1002억원)를 주고 영불 해협을 건너는 불법 이민자를 통제하기로 했다. 프랑스의 4월 선거에서도 반이민을 주창한 국민연합(RN)의 마리 르펜 후보가 결선에 진출하는 등 선전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