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의 한 시장에서 장사 준비하는 상인들.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의 한 시장에서 장사 준비하는 상인들. /연합뉴스
“우루과이전, 가나전 둘 다 장사를 공쳤어요. 사람들이 전부 치킨집만 찾더라고요. 분식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경기 고양에서 돈가스 전문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58)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가 열린 지난 28일 오히려 장사가 평소만 못하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이 씨의 가게는 이날 하루 동안 홀 매출 7만원, 배달 21만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고 했다. 앞선 24일 우루과이전 경기날 매출은 이보다 더 적은 20만원 정도였다.

평상시엔 주중 하루 평균 매출이 50만~70만원은 나오는 매장이다. 그는 “평소보다 매출이 대략 60~70% 빠진 셈”이라며 “월드컵이 열려 반갑긴 하지만 장사하는 입장에선 오히려 원망스럽기도 하다. 가뜩이나 이달 매출이 줄어 걱정이었는데 한국 경기날에 감소 폭이 커 걱정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조별리그 경기가 열린 24일과 28일 치킨집들은 ‘치킨 대란’에 매출 대박을 터뜨렸지만, 나머지 업종의 상당수 외식 자영업자들은 이처럼 평소보다 장사가 안 됐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월드컵 배달 특수가 치킨으로 몰린 탓에 다른 업종은 수익이 줄거나 평소보다 안 좋았던 자영업자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를 앞둔 28일 오후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통닭거리의 한 매장에서 상인들이 치킨을 포장하고 있다./ 뉴스1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를 앞둔 28일 오후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통닭거리의 한 매장에서 상인들이 치킨을 포장하고 있다./ 뉴스1
29일 외식업계에 따르면 우르과이전과 가나전이 열린 양일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 순위를 보면, 매출 1~3위를 기록한 대형 프랜차이즈 치킨3사(교촌·BBQ·bhc) 외에도 소규모 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가 검색순위를 독차지했다. 배달 수요가 폭증하면서 치킨 배달 기사가 모자라 한때 배달비가 1만원 이상 치솟았다. 쿠팡이츠의 경우 전날 프라임타임 할증과 기상 할증 등이 붙으면서 경기 시작 전후 서울지역 배달 단가가 1만~1만6000원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BBQ의 경우 28일 하루 매출이 전월 같은 요일(10월31일)에 견줘 220%, 전주 같은 요일(11월21일)과 비교해도 190% 늘었다. bhc도 전월 대비 297%, 전주 대비 312% 매출이 올랐다. 교촌 역시 가맹점 전체 매출을 종합했을 때 전월 대비 160%, 전주 대비 150%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면 타 업종 외식 음식점들 매출은 고꾸라졌다. 표본이 적지만 서울·경기 지역 20곳 이상 외식업체들을 취재해본 결과, 대부분 평소 같은 요일 매출 대비 20% 이상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강서구의 배달 전문 분식집은 “평소 주중 매출이 못해도 70만원은 나왔는데 28일에는 주문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10만원도 못 벌었다”며 “가게 운영한 지 2년여 만에 최악의 매출”이라고 푸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배달 초밥집을 운영하는 김모 씨(36)도 “월드컵 개막일인 20일쯤 부터 매출이 5~10% 빠지기 시작하더니, 한국전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더 심해 30~40%가량 매출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의 한 낙지탕 전문점은 “가나전이 열린 날 종일 손님이 딱 3명 왔다”면서 “우루과이전 때도 손님이 거의 없어 28일에 가게 문을 닫을까도 고민했다. 손님이 덜 온다고 셔터를 내릴 수는 없어 영업을 했지만 너무 장사가 안 됐다”고 울먹였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시내에서 배달 라이더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시내에서 배달 라이더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월드컵 등 배달 수요가 크게 증가하는 이벤트라도 특정 메뉴 쏠림 현상이 강해지면서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되레 타격을 입는 자영업자들이 많은 것. 일부 자영업자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한시적으로 배달비를 낮추거나 없애는 식으로 자구책을 마련해봤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경기 김포에서 중식집을 운영하는 황모 씨(48)는 “배달원을 부르지 않고 직접 배달을 해봤지만 게 효과는 없었다”면서 “이제 '축구엔 치킨'이라는 공식이 굳어진 것 같다. 그나마 주문한 고객들도 심야 시간대에 치킨집 배달이 안돼 대신 시켰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