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미약품이 K바이오에 던진 화두
한미약품이 폐암 신약 ‘포지오티닙’ 개발을 시작한 것은 2008년이다. 하지만 14년의 연구개발 노력이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다. 지난 25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신속승인을 거부하면서다.

한미약품이 포지오티닙 허가를 받으려면 임상 3상을 거쳐야 한다. 임상 2상만으로는 신속승인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FDA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파트너사인 스펙트럼은 포지오티닙 개발을 사실상 포기했다. 포지오티닙 연구개발 인력 75% 감축을 공식화하면서다.

또다시 실패한 신약 개발

임상 3상에 나서려면 한미약품이 포지오티닙을 회수해 직접 수행하거나 다른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걸림돌은 또 있다. 시장성이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엔허투라는 막강한 경쟁 약물에 선수를 뺏겼다. 약효와 시장 진입 타이밍이 동시에 맞아떨어져야 하는 ‘신약 성공 공식’을 충족하기 어려워졌다.

한미약품은 이번 일로 그다지 동요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약 성공 확률은 상상 이상으로 낮다. 연구실에서 약물을 처음 발견하고 당국의 판매 허가를 받기까지 10년 넘게 걸리고,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의 개발 자금이 소요된다. 그런데도 ‘판매 허가 티켓’을 따낼 확률은 3~4%에 불과하다. 신약 개발 실패는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에선 일상적인 일이다.

그런데도 전 세계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신약 개발에 매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작은 바이오벤처였던 길리어드가 글로벌 10위권 제약사로 발돋움한 것도 C형간염 신약 덕분이었다. 블록버스터 신약의 시장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세계 1위 의약품인 애브비의 휴미라는 지난해에만 25조원어치 팔렸다. 현대자동차 작년 매출의 20%를 웃돈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도 신약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바이오 육성 뒷짐 진 정부

한미약품은 우리 제약·바이오산업에 상징적인 존재다. 지금까지 기술수출 계약 건수는 13건에 이른다. 신약 기술수출의 물꼬를 트면서 K바이오 붐을 일으켰다. 하지만 숱한 우여곡절도 겪었다. 6개 물질은 결국 되돌려 받았다. 일부는 효능을 내지 못해 실패 판정을 받기도 했다. 기술수출 계약 불성실 공시로 홍역도 치렀다. 오죽했으면 신약 개발 과정에서 겪음 직한 경험은 모두 해봤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경험과 실패는 오히려 한미약품에는 든든한 자산이 될 게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한미약품이 더 기대된다는 일각의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쉬운 것은 정부와 시장이다. 한미약품이 이럴진대 바이오벤처에 신약 개발은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바이오 육성 구호만 반복될 뿐 구체적인 그림이 없다. 돈줄이 돼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 바이오 메가펀드는 지지부진하다. 높은 상장 문턱에 바이오기업들의 기업공개(IPO)는 가물에 콩 나듯하다. 그러니 바이오산업에 돈이 돌 리가 없다. 게다가 바이오벤처 창업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모태펀드마저 축소하려는 움직임이다. 바이오 육성은커녕 고사시키려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