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미술 전시의 전통적인 비수기로 꼽힌다. 사람들의 문화생활이 화려한 공연이나 영화에 집중되고, 갤러리들은 내년 전시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조금 다르다. 수년간 볼 수 없었던 국내 유명 작가들의 개인전이 서울 삼청동 거리를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백남준 전시, 이중섭 등 거장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이건희 컬렉션 전시도 여전히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명작을 마주하며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담담하게 내년을 준비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선 이기봉 작가(65)의 개인전 ‘웨어 유 스탠드(당신이 서 있는 곳)’가 열리고 있다. 2012년 아르코미술관 전시 이후 꼭 10년 만에 열리는 이 작가의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선 안개가 낀 듯한 몽환적인 풍경화 50여 점을 선보였다. 캔버스 위에 풍경을 그린 뒤 폴리에스테르 천을 씌운 것. 인간이 세상을 인지할 때 언어, 감각 등 ‘막’을 통해서만 어렴풋이 인식한다는 것을 표현했다. 전시는 이달 31일까지 이어진다.

세계적 설치미술가 강익중 작가(62)도 12년 만에 국내 개인전으로 돌아왔다.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개인전(사진) ‘달이 뜬다’에서 그는 ‘달항아리’를 화폭에 담았다. 달항아리는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뒤 붙인다. 강 작가는 이를 통해 달항아리를 ‘연결’ ‘소통’의 매개체로 사용했다. 전시는 이달 11일까지다. 갤러리현대는 전시 준비기간을 거쳐 21일부터 박민준 작가(51)의 전시를 연다. 서양 고전풍 회화를 연상시키는 섬세한 화법이 매력적인 작가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기념 전시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경기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선 백남준의 초기 작품을 다룬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가 내년 3월 26일까지 개최된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롯데칠성, 개인 컬렉터 등이 소장한 백남준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도 백남준 전시 2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백남준 효과’에선 고딕 성당의 모습을 닮은 ‘나의 파우스트’ 시리즈(1989~1991), 동서양을 아우르는 미디어의 힘을 표현한 ‘칭기즈칸의 복권’(1993) 등 총 130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같은 곳에서 열리는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에선 오랫동안 꺼져 있다가 지난 9월 재가동된 백남준의 대표작 ‘다다익선’(1988)을 볼 수 있다. 두 전시 모두 내년 2월 26일까지다.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인기 전시들로 주말을 채워봐도 좋다. ‘이건희 컬렉션’도 그중 하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선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기증한 작품으로 이뤄진 ‘국민화가’ 이중섭 특별전이 열린다. ‘닭과 병아리’(1950년대), ‘물놀이하는 아이들’(1950년대) 등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된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기간은 내년 4월 23일까지로 넉넉한 편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