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스 드 코메르스'
로마 판테온에서 영감받아 설계
중앙의 넓은 공간과 화려한 돔
내부 높이 9m 콘크리트벽 세워
옛모습 살리면서 현대건축미 뽐내
세계 무역 역사 묘사한 천장화
바닥에 드러누워 감상하기도
< 다다오 매직 :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 >

‘월드 클래스 미술관’을 지천에 두고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프랑스 현지인과 파리지앵들은 사정이 달랐는데 지난해 5월부터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미술관이 등장하면서다. 세계적 명품 그룹 케링의 창업주이자 아트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가 만든 현대미술관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다.
1만여 점이 넘는 프랑수아 피노의 방대한 컬렉션을 볼 수 있는 공간이자 파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핫 플레이스’다. 이곳은 코로나 이후 파리를 찾는 관광객의 ‘0순위 방문지’가 됐다. 프랑스 전역에서 찾아온 사람과 파리 시민들은 매일 건물 앞에 긴 줄을 서고 있다.
곡물저장소가 미술관으로

겉모습은 이전과 같지만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쏟아지는 햇살과 압도적인 높이의 노출 콘크리트 벽면, 천장의 화려한 그림에 압도당한다. 두 세기에 걸친 건물의 역사를 담아 미술관으로 바꿔놓은 건 일본이 낳은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

외관의 옛 모습과 내부 난간, 기둥 등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건축미를 뽐내도록 만든 데는 최첨단의 건축 기술이 모두 쓰였다. 밖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건축물 안에서 사람들은 바닥에 드러눕거나 벽에 기대어 앉거나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건축물 자체를 감상한다.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면 햇살이 그대로 비치는 유리 돔이 자리한다. 그 밑엔 세계 무역의 역사를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천장을 가득 메운다. 현대적인 전시 공간과 전통적 회화의 조화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건축물 내부에서 위트 넘치는 예술 작품을 찾아보는 것도 재밌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엔 벽을 뚫고 나온 흰 쥐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건물 천장 난간엔 비둘기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마치 살아 있는 동물처럼 착시를 일으키지만 이는 각각 라이언 갠더의 ‘I...I...I’(2019), 마우리지오 카텔란의 ‘아더스’(2018)라는 작품이다. 개관전 때부터 화제가 됐다.
여든네 살 컬렉터의 꿈
“처음에는 그저 도달할 수 없는 꿈과 같았다. 그러던 꿈이 더 큰 열망이 됐고, 이제 그 열망이 현실이 됐다. 언젠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도시 파리에서 내 컬렉션을 보여줄 수 있기를 오랫동안 바랐다.”예술품 수집가 피노가 미술관 개관 첫날 한 말이다. 이렇게 말한 데는 사연이 있다. 피노는 구찌 이브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발렌시아가 등 다수의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케링그룹 설립자다. 2001년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뒤엔 작품 수집과 재단 운영에만 집중해 왔다. 그는 마크 로스코,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등 내로라하는 현대 미술 작가의 작품 약 3500점을 소장하고 있다. 영국의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도 그의 소유다.
피노는 약 20년 전부터 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1999년부터 파리 서쪽 센강변에 있는 세갱섬의 옛 르노자동차 공장 부지를 미술관 자리로 고심했다. 하지만 정부 승인이 늦어져 2005년 계획을 철회했다. 이탈리아 베니스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팔라초 그라시와 푼타 델라 도가나 등 ‘피노 컬렉션 미술관’ 두 개를 차례로 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두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던 그때. 이 건축가와 컬렉터는 손을 맞잡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미술관이 유럽에 거대한 희망을 가져다줄 것으로 믿었다.
파리=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