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30일(현지시간) “과도한 긴축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경기 침체 없이 물가를 잡을 연착륙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발언을 쏟아낼 것이란 예상을 깨고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을 강조하자 글로벌 증시는 급등했다.

이달부터 긴축 속도 조절

파월 의장은 이날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브루킹스연구소 주최 연설에서 “(기준금리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에 충분히 제약적인 수준에 근접했다”며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 시점은 이르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6월부터 4회 연속 기준금리를 75bp(1bp=0.01%포인트) 올렸지만 12월엔 50bp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이 전해지자 금리 선물시장에서 Fed가 12월에 기준금리를 50bp 인상할 확률은 하루 만에 66%에서 77%로 높아졌다. 내년 3월 금리 전망 수준은 연 5.0~5.25%에서 연 4.75~5.0%로 떨어졌다.

파월 의장은 “연착륙을 달성할 수 있는 경로가 좁아지고 있지만 그 경로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며 연착륙에 대한 기대도 버리지 않았다.

이날 공개된 지표들도 파월 발언을 뒷받침했다. Fed의 경기동향 보고서인 베이지북은 “수요 약화와 공급망 차질 해소로 물가 상승의 속도가 느려졌다”고 진단했다. 소매업체들이 과잉 재고를 털기 위해 몇몇 제품의 가격을 낮췄고, 목재 등 일부 원자재 가격도 내려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미 노동부의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10월 구인 건수는 1030만 건으로 전월보다 35만3000건 감소했다. 노동 수요가 줄면 임금 상승세가 꺾여 인플레이션 압력이 줄어든다.

1일 발표된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도 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에 힘을 실어줬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전년 동기 대비 미국의 10월 근원 PCE 가격지수 상승률은 5.0%로 집계됐다. 월가와 Fed의 추정치(5.0%)에 부합했다. 이 상승률은 지난 7월 4.6%를 기록한 뒤 8월(4.9%), 9월(5.2%)에 계속 올랐지만 석 달 만에 상승세가 꺾였다.

근원 PCE 가격지수는 가격 변동이 심한 식료품과 에너지 부문을 빼고 계산한다. Fed가 정책 결정에 앞서 참고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포함한 PCE 가격지수 상승률은 전월 6.3%에서 10월 6.0%로 0.3%포인트 하락했다.

금리 인상 끝난 건 아냐

파월 의장은 “물가 안정을 위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지난 1년간의 긴축 정책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했다”며 “40여 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려면 노동시장이 진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둔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 달의 데이터에 불과하다”며 “물가상승률이 수개월 하락한 뒤 다시 상승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고 신중론을 펼쳤다.

파월 의장은 “최종 금리 수준은 9월 예상보다 다소 높아질 것(somewhat higher)”이라고 내다봤다. Fed가 9월 FOMC 때 내놓은 내년 말 기준금리 중간값(연 4.6%)보다 실제 기준금리가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파월 의장이 11월 FOMC 기자회견 때 “상당히 더 높을 수 있다(a lot higher)”고 한 것에 비해 표현 강도가 약해졌다. 이 때문에 시장은 최종 금리 상승보다 금리 속도 조절론에 더 주목했다. 이날 나스닥지수는 4.41% 급등했고 다우지수와 S&P500지수는 각각 2.18%, 3.09% 올랐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