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PRO] 북미 증설 한 발 늦은 삼성SDI, IRA 덕에 전화위복?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종목 집중탐구
증설 투자 대신 프리미엄 제품으로 수익성 ‘고공행진’
“IRA 대응할 韓배터리 중 완성차업체에 남은 유력 선택지”
‘성장통’인 신·증설 초기 수율 문제 피할 수 있을까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2차전지 완제품(셀), 그 중에서도 전기차배터리 제조업체라고 하면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 전지사업본부)과 삼성SDI 둘을 주요 기업으로 꼽았습니다. 그전까진 2차전지 사업의 명맥만 유지하던 SK이노베이션(현 SK온)이 전기차 산업 급성장이 가시화되자 뒤늦게 공격적 투자에 나서면서 지금의 빅3 체제가 만들어졌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후발주자였던 SK온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에서 선발주자인 삼성SDI를 눌렀습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10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기준 시장점유율은 SK온이 6.2%로 5위에, 삼성SDI가 4.8%로 6위에 각각 랭크됐습니다. SK온이 삼성SDI를 처음 추월한 건 작년 1~7월 사용량이 발표됐을 때인데, 이후 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후발주자에게 자리를 내줬으면 주가 흐름은 지지부진할 법한데, 이달 1일 종가를 LG에너지솔루션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올해 1월27일 종가와 비교한 수익률은 삼성SDI가 22.22%로 가장 높습니다.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은 15.84% 올랐고, SK온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은 오히려 17.63% 하락했죠. SK이노베이션의 본업이 정유사업이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국제유가 급등락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그렇게 잘 나간다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 주가를 전혀 방어해주지 못했습니다.
일단 삼성SDI의 3분기 실적부터 뜯어 보시죠.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6.05% 늘어난 5조3680억원, 영업이익은 51.51% 증가한 5659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영업이익이 컨센서스(증권가 전망치 평균) 4927억원을 14.8% 웃돌았죠.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삼성SDI는 프리미엄 제품을 통해 진입장벽을 높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경쟁사 대비 20% 이상 높은 판가를 유지할 수 있어 이익률도 훨씬 높다”고 평가합니다.
4분기에도 깜짝 실적이 이어질 걸로 전망됩니다. 김지산 키움증권 연구원은 “자동차전지는 반도체 부족 이슈가 완화되면서 삼성SDI의 주된 목표 시장인 프리미엄급 전기차 생산이 늘어날 것”이라며 삼성SDI의 프리미엄 전기차 배터리인 젠(Gen)5의 실적 기여 확대를 점쳤습니다.
삼성SDI의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6267억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135.87% 증가한다는 데 증권가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이 바꾼 상황이 그 동안 증설이나 합작사 설립에 소극적이었던 삼성SDI에 ‘꽃놀이패’가 될 걸로 증권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논리는 이렇습니다. IRA는 배터리를 만드는 원재료까지 미국 및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에서 조달하도록 합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죠. 한국 배터리기업들만 중국산 배터리 원재료를 쓰지 않고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세워 운영할 수 있는데,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이미 다양한 완성차업체와 손을 잡고 있어 남은 건 삼성SDI뿐이라는 겁니다. 특히 완성차업체 입장에서 배터리 조달처가 한 곳에 집중되는 데 따른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복수의 배터리업체와 손을 잡으려 한다고 합니다. 이에 이전까지 완성차업체와의 합작과 북미 지역 증설에 소극적이었던 삼성SDI가 먼저 합작사를 설립한 경쟁사들보다 협상에서 더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김철중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삼성SDI에 대해 “(2차전지 제조업체와 완성차업체 사이) 합종연횡의 최대 수혜”를 기대하며 “경쟁사들의 조금 조달은 주가에 리스크였으나, 삼성SDI의 자금조달 시나리오는 주가에 긍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미래에셋증권이 그린 삼성SDI의 자금조달 시나리오는 △2022~2024년 3년 합계 법인세·감가상각비 차감 전 순이익(EBITDA) 예상치 14조원 △현재 주가 기준으로 약 2조5000억원어치인 자사주 333만주 매각 △보유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15.2%를 매각해 약 7조원 조달 △약 5조원의 가치로 추정되는 전자재료 사업부 분할 매각 등입니다. 자사주 매각은 보통 주가에 부정적인 이벤트이지만, 매수 주체가 삼성전자라면 삼성SDI 주가엔 호재가 될 수 있다는 게 김철중 연구원의 생각입니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이 2차전지 사업을 명맥만 유지하다가 전기차 시장의 가파른 성장을 보고 투자 확대에 나섰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증권가가 그리는 삼성SDI의 합작사 확장 시나리오와 비슷해 보이지 않나요. 뒤늦게 북미 지역 생산능력 확대에 나섰으니까요.
기왕 시작했으니 SK온이 2020년부터 연속 적자를 이어가는 점도 한 번 더 짚어야겠습니다. 선발주자를 따라잡기 위한 공격적인 투자 때문이죠. SK온뿐만 아니라 LG에너지솔루션의 최근 영업이익률이 삼성SDI보다 낮은 이유도 아마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기 때문일 겁니다. 증권가의 기대대로 삼성SDI가 내년에 적극적으로 완성차업체와의 합작법인을 설립해 북미 지역 생산능력 확대에 나서면 역시 수익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뜻이죠.
하나 더 있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한국 2차전지 산업에 큰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던 ‘노스볼트’라는 스웨덴의 2차전지 벤처기업을 기억하나요. 세계에서 가장 생산 규모가 큰 완성차업체인 폭스바겐그룹이 파트너로 꼽으면서 당시엔 한국 2차전지 산업을 무너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연일 회자됐지만, 지금은 좋은 소식은 별로 들려오지 않습니다. 공장을 구축한 초기의 부진한 수율(품질 합격 비율)도 그 중 하나입니다.
삼성SDI의 공정기술이 어느 수준인지는 모르지만, 배터리 공장의 신·증설 초기 수율 문제를 피해간 2차전지 기업은 드물다고 하죠.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국내 3사 중에서 후발주자인 SK온이 수율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전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분사 전인 LG화학 전지사업본부 시절 폴란드 공장 증설라인의 수율이 생각처럼 빠르게 올라오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시절이 있었고요.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증설 투자 대신 프리미엄 제품으로 수익성 ‘고공행진’
“IRA 대응할 韓배터리 중 완성차업체에 남은 유력 선택지”
‘성장통’인 신·증설 초기 수율 문제 피할 수 있을까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2차전지 완제품(셀), 그 중에서도 전기차배터리 제조업체라고 하면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 전지사업본부)과 삼성SDI 둘을 주요 기업으로 꼽았습니다. 그전까진 2차전지 사업의 명맥만 유지하던 SK이노베이션(현 SK온)이 전기차 산업 급성장이 가시화되자 뒤늦게 공격적 투자에 나서면서 지금의 빅3 체제가 만들어졌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후발주자였던 SK온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에서 선발주자인 삼성SDI를 눌렀습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10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기준 시장점유율은 SK온이 6.2%로 5위에, 삼성SDI가 4.8%로 6위에 각각 랭크됐습니다. SK온이 삼성SDI를 처음 추월한 건 작년 1~7월 사용량이 발표됐을 때인데, 이후 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후발주자에게 자리를 내줬으면 주가 흐름은 지지부진할 법한데, 이달 1일 종가를 LG에너지솔루션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올해 1월27일 종가와 비교한 수익률은 삼성SDI가 22.22%로 가장 높습니다.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은 15.84% 올랐고, SK온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은 오히려 17.63% 하락했죠. SK이노베이션의 본업이 정유사업이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국제유가 급등락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그렇게 잘 나간다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 주가를 전혀 방어해주지 못했습니다.
프리미엄 전기차 배터리 호조…“호실적 이어질 것”
국내 배터리 완제품 3사의 최근 추가 흐름은 3분기 실적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실제 1월27일 종가 대비 주가 수익률 순서대로 3분기 영업이익률이 높습니다. 삼성SDI가 10.54%, LG에너지솔루션이 6.82%, SK이노베이션이 3.09%를 각각 기록했죠. 국제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정유 부문이 포함된 SK이노베이션의 전체 실적으로 비교하는 게 불합리하다고요? SK온만 놓고 보면 3분기에 192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020년부터 단 한 번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습니다.일단 삼성SDI의 3분기 실적부터 뜯어 보시죠.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6.05% 늘어난 5조3680억원, 영업이익은 51.51% 증가한 5659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영업이익이 컨센서스(증권가 전망치 평균) 4927억원을 14.8% 웃돌았죠.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삼성SDI는 프리미엄 제품을 통해 진입장벽을 높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경쟁사 대비 20% 이상 높은 판가를 유지할 수 있어 이익률도 훨씬 높다”고 평가합니다.
4분기에도 깜짝 실적이 이어질 걸로 전망됩니다. 김지산 키움증권 연구원은 “자동차전지는 반도체 부족 이슈가 완화되면서 삼성SDI의 주된 목표 시장인 프리미엄급 전기차 생산이 늘어날 것”이라며 삼성SDI의 프리미엄 전기차 배터리인 젠(Gen)5의 실적 기여 확대를 점쳤습니다.
삼성SDI의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6267억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135.87% 증가한다는 데 증권가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소극적 투자가 배터리·완성차 합종연횡의 최대 수혜로”
삼성SDI에 대한 내년 전망을 보면 ‘북미 지역 합작사 확장’이 키워드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공격적으로 완성차업체와의 합작을 통해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대해왔지만, 삼성SDI는 상대적으로 증설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최근 발표한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 설립이 유일한 북미 지역 증설 계획이었죠.하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이 바꾼 상황이 그 동안 증설이나 합작사 설립에 소극적이었던 삼성SDI에 ‘꽃놀이패’가 될 걸로 증권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논리는 이렇습니다. IRA는 배터리를 만드는 원재료까지 미국 및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에서 조달하도록 합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죠. 한국 배터리기업들만 중국산 배터리 원재료를 쓰지 않고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세워 운영할 수 있는데,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이미 다양한 완성차업체와 손을 잡고 있어 남은 건 삼성SDI뿐이라는 겁니다. 특히 완성차업체 입장에서 배터리 조달처가 한 곳에 집중되는 데 따른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복수의 배터리업체와 손을 잡으려 한다고 합니다. 이에 이전까지 완성차업체와의 합작과 북미 지역 증설에 소극적이었던 삼성SDI가 먼저 합작사를 설립한 경쟁사들보다 협상에서 더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김철중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삼성SDI에 대해 “(2차전지 제조업체와 완성차업체 사이) 합종연횡의 최대 수혜”를 기대하며 “경쟁사들의 조금 조달은 주가에 리스크였으나, 삼성SDI의 자금조달 시나리오는 주가에 긍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미래에셋증권이 그린 삼성SDI의 자금조달 시나리오는 △2022~2024년 3년 합계 법인세·감가상각비 차감 전 순이익(EBITDA) 예상치 14조원 △현재 주가 기준으로 약 2조5000억원어치인 자사주 333만주 매각 △보유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15.2%를 매각해 약 7조원 조달 △약 5조원의 가치로 추정되는 전자재료 사업부 분할 매각 등입니다. 자사주 매각은 보통 주가에 부정적인 이벤트이지만, 매수 주체가 삼성전자라면 삼성SDI 주가엔 호재가 될 수 있다는 게 김철중 연구원의 생각입니다.
뒤늦은 북미 증설 추진, 정말로 ‘꽃놀이패’일까
여기까지 보면 삼성SDI는 내년에 ‘꽃길’만 걸을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럴까요.앞서 SK이노베이션이 2차전지 사업을 명맥만 유지하다가 전기차 시장의 가파른 성장을 보고 투자 확대에 나섰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증권가가 그리는 삼성SDI의 합작사 확장 시나리오와 비슷해 보이지 않나요. 뒤늦게 북미 지역 생산능력 확대에 나섰으니까요.
기왕 시작했으니 SK온이 2020년부터 연속 적자를 이어가는 점도 한 번 더 짚어야겠습니다. 선발주자를 따라잡기 위한 공격적인 투자 때문이죠. SK온뿐만 아니라 LG에너지솔루션의 최근 영업이익률이 삼성SDI보다 낮은 이유도 아마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기 때문일 겁니다. 증권가의 기대대로 삼성SDI가 내년에 적극적으로 완성차업체와의 합작법인을 설립해 북미 지역 생산능력 확대에 나서면 역시 수익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뜻이죠.
하나 더 있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한국 2차전지 산업에 큰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던 ‘노스볼트’라는 스웨덴의 2차전지 벤처기업을 기억하나요. 세계에서 가장 생산 규모가 큰 완성차업체인 폭스바겐그룹이 파트너로 꼽으면서 당시엔 한국 2차전지 산업을 무너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연일 회자됐지만, 지금은 좋은 소식은 별로 들려오지 않습니다. 공장을 구축한 초기의 부진한 수율(품질 합격 비율)도 그 중 하나입니다.
삼성SDI의 공정기술이 어느 수준인지는 모르지만, 배터리 공장의 신·증설 초기 수율 문제를 피해간 2차전지 기업은 드물다고 하죠.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국내 3사 중에서 후발주자인 SK온이 수율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전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분사 전인 LG화학 전지사업본부 시절 폴란드 공장 증설라인의 수율이 생각처럼 빠르게 올라오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시절이 있었고요.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