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강줄기를 따라 흘러 온 인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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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로런스 C. 스미스 지음
추선영 옮김 / 시공사
444쪽│2만3000원
강은 풍요의 기반이자 문명의 토대
상당수 전쟁은 강 차지하려는 목적
英·中·獨…세계 주요 강 이야기 담아
로런스 C. 스미스 지음
추선영 옮김 / 시공사
444쪽│2만3000원
강은 풍요의 기반이자 문명의 토대
상당수 전쟁은 강 차지하려는 목적
英·中·獨…세계 주요 강 이야기 담아
40억 년 전쯤, 지구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물은 바위를 두드리며 산을 깎아 내렸고, 그 잔해를 아래로 아래로 밀어냈다. 수백만 개의 빗방울이 모여 강을 이뤘고, 물의 힘은 강해졌다. 강의 임무는 단 하나. 모든 것을 아래로 내려보내는 것이었다. 호수와 바다에 도달한 강물은 땅에서 쓸어온 것들을 쏟아내고 소멸했다.
인간은 강을 따라 대륙을 탐험했다. 몸을 씻고, 목을 축였다. 강가의 비옥한 땅에 정착해 문명을 세우고 에너지와 식량을 생산했다. 강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지구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리버>는 미국 브라운대 지구·환경 및 행성과학학부 교수이자 지리학자인 로런스 C. 스미스가 쓴 강에 대한 대서사다. ‘지리학자의 시선으로 보는 강의 두 얼굴’이라는 부제처럼 최초의 강이 형성된 시기부터 인류의 문명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두루 파고든다. 늘 그곳에 있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과소평가하고 있는 강의 힘에 대해서도 역설한다.
저자는 강이 인류를 있게 한 ‘자연 자본’인 동시에 ‘파괴와 점령의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역사적 전환점의 중심엔 늘 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가 없던 시절, 정복자들은 강을 기준으로 땅을 갈랐다. 권력 과시 수단으로 강을 이용했다. 루비콘강을 건넌 카이사르, 델라웨어강을 건넌 조지 워싱턴, 뫼즈강을 건넌 히틀러가 그랬다.
메콩강 삼각주에선 4년에 걸친 게릴라전이 이어졌고, 한 세기에 걸쳐 외국 해군은 양쯔강을 순찰하며 반란을 진압한 뒤 중국 내륙까지 힘을 과시했다. 이슬람국가(IS)는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성장했고, 이들이 마지막까지 지킨 요새도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있었다. 고대부터 미국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세계대전과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강은 전쟁의 역사에 빠지지 않는 요소로 자리했다.
강이 수많은 목숨을 바칠 만큼 중요한가에 대한 근거도 있다. 나일강은 홍수를 일으켜 풍부한 토사를 제공해 이집트 수도의 수력 발전과 도시 상수도를 있게 했다. 지금도 이집트 카이로 시내를 관통하는 강변의 값비싼 부동산은 나일강이 있기에 존재한다.
미국 동북부를 흐르는 허드슨강은 과거 델라웨어족에게 물고기를 제공했고, 유럽 이민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하는 관문이 됐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 모두 강 유역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익숙한 지식이다. 강을 차지하는 자가 부와 문명을 모두 움켜쥘 수 있었다는 얘기다.
책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수천 년 동안 자연자본, 영토, 접근성, 복리와 권력을 제공해온 강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데 방점을 둔다. 그러면서 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 인간이 스스로 족쇄를 채운 현실을 비판한다.
미국 대공황기에 시작된 하천 토목 사업과 대규모 댐 건설이 전 세계 정부 주도 사업으로 번지며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홍수를 방지하는 등의 성과를 냈지만, 동시에 생태계 훼손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마주하게 됐다. 무분별하게 지은 댐과 발전시설로 인해 생태계 파괴와 시설 붕괴 사고 등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도 지적한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댐 철거 운동 사례도 흥미롭다.
저자는 ‘물을 현명하게 다스리는 방법’을 제시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 세계가 띄운 위성을 활용해 지구를 흐르고 있는 강의 정확한 순환 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새로운 센서와 위성, 모델을 구축해 환경에 덜 해로운 방식으로 강 전력을 사용하게 하자는 주장이다.
전 세계 주요 강 유역을 오랜 시간 발로 뛰어 현장감 있게 사례를 파고든 점이 놀랍다. 10여 년 전부터 각 도시가 추진하고 있는 수변공간 재생사업은 인류가 강을 다스릴 수 있는 긍정적인 대안들이다. 미국 뉴욕시는 2011년부터 10년간 브루클린 인근에 수변공간을 만들어 대중에게 공개했고, 영국 런던 템스강 유역은 대대적인 상업, 주거, 오피스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중국 상하이 푸둥지구와 독일 엘베강 일대 역시 버려졌던 강 유역을 인류와 환경에 이롭게 변화시켰다. 저자는 태곳적부터 강이 가졌던 힘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인류의 문명을 형성한 것은 도로도 기술도, 정치 지도자도 아니다. 바로 강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인간은 강을 따라 대륙을 탐험했다. 몸을 씻고, 목을 축였다. 강가의 비옥한 땅에 정착해 문명을 세우고 에너지와 식량을 생산했다. 강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지구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리버>는 미국 브라운대 지구·환경 및 행성과학학부 교수이자 지리학자인 로런스 C. 스미스가 쓴 강에 대한 대서사다. ‘지리학자의 시선으로 보는 강의 두 얼굴’이라는 부제처럼 최초의 강이 형성된 시기부터 인류의 문명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두루 파고든다. 늘 그곳에 있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과소평가하고 있는 강의 힘에 대해서도 역설한다.
저자는 강이 인류를 있게 한 ‘자연 자본’인 동시에 ‘파괴와 점령의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역사적 전환점의 중심엔 늘 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가 없던 시절, 정복자들은 강을 기준으로 땅을 갈랐다. 권력 과시 수단으로 강을 이용했다. 루비콘강을 건넌 카이사르, 델라웨어강을 건넌 조지 워싱턴, 뫼즈강을 건넌 히틀러가 그랬다.
메콩강 삼각주에선 4년에 걸친 게릴라전이 이어졌고, 한 세기에 걸쳐 외국 해군은 양쯔강을 순찰하며 반란을 진압한 뒤 중국 내륙까지 힘을 과시했다. 이슬람국가(IS)는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성장했고, 이들이 마지막까지 지킨 요새도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있었다. 고대부터 미국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세계대전과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강은 전쟁의 역사에 빠지지 않는 요소로 자리했다.
강이 수많은 목숨을 바칠 만큼 중요한가에 대한 근거도 있다. 나일강은 홍수를 일으켜 풍부한 토사를 제공해 이집트 수도의 수력 발전과 도시 상수도를 있게 했다. 지금도 이집트 카이로 시내를 관통하는 강변의 값비싼 부동산은 나일강이 있기에 존재한다.
미국 동북부를 흐르는 허드슨강은 과거 델라웨어족에게 물고기를 제공했고, 유럽 이민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하는 관문이 됐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 모두 강 유역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익숙한 지식이다. 강을 차지하는 자가 부와 문명을 모두 움켜쥘 수 있었다는 얘기다.
책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수천 년 동안 자연자본, 영토, 접근성, 복리와 권력을 제공해온 강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데 방점을 둔다. 그러면서 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 인간이 스스로 족쇄를 채운 현실을 비판한다.
미국 대공황기에 시작된 하천 토목 사업과 대규모 댐 건설이 전 세계 정부 주도 사업으로 번지며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홍수를 방지하는 등의 성과를 냈지만, 동시에 생태계 훼손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마주하게 됐다. 무분별하게 지은 댐과 발전시설로 인해 생태계 파괴와 시설 붕괴 사고 등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도 지적한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댐 철거 운동 사례도 흥미롭다.
저자는 ‘물을 현명하게 다스리는 방법’을 제시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 세계가 띄운 위성을 활용해 지구를 흐르고 있는 강의 정확한 순환 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새로운 센서와 위성, 모델을 구축해 환경에 덜 해로운 방식으로 강 전력을 사용하게 하자는 주장이다.
전 세계 주요 강 유역을 오랜 시간 발로 뛰어 현장감 있게 사례를 파고든 점이 놀랍다. 10여 년 전부터 각 도시가 추진하고 있는 수변공간 재생사업은 인류가 강을 다스릴 수 있는 긍정적인 대안들이다. 미국 뉴욕시는 2011년부터 10년간 브루클린 인근에 수변공간을 만들어 대중에게 공개했고, 영국 런던 템스강 유역은 대대적인 상업, 주거, 오피스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중국 상하이 푸둥지구와 독일 엘베강 일대 역시 버려졌던 강 유역을 인류와 환경에 이롭게 변화시켰다. 저자는 태곳적부터 강이 가졌던 힘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인류의 문명을 형성한 것은 도로도 기술도, 정치 지도자도 아니다. 바로 강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