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진행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단독 팬미팅 모습.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운영 중인 그가 400명의 팬을 향해 손으로 하트 모양을 하고 있다. /사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3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진행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단독 팬미팅 모습.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운영 중인 그가 400명의 팬을 향해 손으로 하트 모양을 하고 있다. /사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교수가 장소까지 대절해 연 단독 팬 미팅에 400명이 몰렸다. 구독자 약 45만 명을 가진 '최재천의 아마존' 유튜버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68)의 이야기다.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최 교수는 "제가 연예인도 아닌데 너무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최 교수는 스승인 하버드대 교수였던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통섭'을 번역하고 호주제 폐지를 비롯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는 서울대공원의 남방큰돌고래를 방류하는 일에 앞장섰던 과학자다. 그의 이름을 이제 구글에서 입력하면 자동 완성되는 예상어는 '대학 교수'가 아니라 '유튜버'다. 그 정도로 그의 유튜브는 파급력이 커졌다.

"연예인 아니고 교수님이요?"

3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진행된 그의 단독 팬 미팅은 익숙하지 않은 장관이었다. 연예인도 아닌 대학 교수가 팬 미팅을 하는 데 수백명의 팬이 몰린 것. 이화여대 관계자도 행사를 위해 대강당 대관 시 "연예인 누가 오냐"고 묻자 "최재천 교수님이다"라는 관계자의 답변에 "교수님이요?"라면서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3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진행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단독 팬미팅에 앞서 팬들이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 /사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3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진행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단독 팬미팅에 앞서 팬들이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 /사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팬 미팅은 3시 시작 예정이었지만, 2시부터 몰린 사람들은 강단 중앙에 틀어놓은 최 교수의 유튜브 영상을 함께 시청하며 팬 미팅을 기다렸다. 일부는 현장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장사진을 치기도 했다. 현장에는 친구들과 함께 온 20대 여성뿐 아니라 혼자 온 20대 남성, 30대부터 50대 남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팬 미팅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들 둘과 함께 손을 잡고 4인 가족이 함께 온 사례도 있었다.

혼자 왔다는 20대 남성 박 모 씨는 "평소 교수님 유튜브를 자주 시청한다. 본인은 전혀 자연과학 쪽으로는 모르는데 교수님 영상을 보면서 사고의 폭을 넓히고 있다"면서 "또 사회에 대해서 주시는 여러 가지 견해를 접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힌트를 얻기도 한다"고 팬 미팅에 온 이유를 전했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왔다는 30대 여성 최 모 씨도 "이전부터 교수님 책을 많이 접하고 평소 너무 애청하는 유튜브 채널"이라고 말했다.

팬 미팅 시작과 함께 진행자가 "본인이 가장 멀리서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말씀해달라"고 말하자 부산, 양산, 포항, 울진은 물론 심지어 제주도에서 왔다는 팬도 나왔다. 4살, 7살, 9살 어린이도 부모와 함께 동석했다. 주최 측은 이들 팬에게 먼저 경품을 주고 행사를 시작했다.
3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진행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단독 팬미팅 모습. /사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3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진행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단독 팬미팅 모습. /사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이날 팬 미팅은 최 교수의 강의 없이 순전히 '팬 미팅'으로 진행됐다. 대한축구협회 축구사랑나눔재단 이사이기도 한 최 교수는 "팬 미팅을 앞두고 새벽에 포르투갈전을 봐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고 말하면서 내년도 희망사항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는 "골드버튼"이라고 답변했다. 유튜브는 구독자 10만명이 넘으면 실버버튼을, 100만명은 골드버튼의 트로피를 수여한다.

진행자가 최 교수의 목소리가 배우 한석규와 비슷하다고 칭찬하자 그는 "일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후 공개적으로 사과한 적도 있다"고 말하며 관객들의 폭소를 유도했다. 과거 올렸던 영상 섬네일에서 그가 이소룡 복장으로 합성한 채로 나온 것이 언급되면서 이날 무대에서 그는 이소룡처럼 노란 운동복을 입고 쌍절곤을 돌리는 모습도 연출했다. 최 교수가 "유튜버 이전에 대학교수다. 대학 교수를 꼭 이렇게"라고 말하자 팬들이 "귀여워요"라고 환호성을 내기도 했다.
3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진행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단독 팬미팅 모습. 이날 행사에선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에 그가 이소룡처럼 복장을 입은 것처럼 합성된 과거 영상 섬네일이 언급됐다. 이에 최 교수는 무대에서 이소룡처럼 운동복을 입고 쌍절곤을 돌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사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3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진행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단독 팬미팅 모습. 이날 행사에선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에 그가 이소룡처럼 복장을 입은 것처럼 합성된 과거 영상 섬네일이 언급됐다. 이에 최 교수는 무대에서 이소룡처럼 운동복을 입고 쌍절곤을 돌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사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이어서 입장 전 팬들이 메모로 남긴 질문에 답변하는 등 코너가 이어진 후 최 교수가 경품을 주기도 했다. 별도로 진행된 추첨에서 1등 상품은 동반 1인을 포함한 최 교수와의 식사권이었다. 또 밸런스게임, 기부를 위해 최 교수가 쓰던 애장품 등으로 경매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코너가 진행됐다.

중간에 진행자로 합류한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의 MC인 재재(본명 이은재)는 "처음에 팬 미팅을 한다고 했을 때 '교수님이 팬 미팅을요? 학교 대강당에서요?'라고 생각했다"면서 "굉장히 좀 격세지감을 느끼고 함께 하게 돼서 영광"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애 낳으면 바보' 영상부터 팬미팅까지

유튜브 채널 분석 전문 사이트 블링(Vling)에 따르면 최 교수는 국내 유튜버 구독자 순위로는 상위 2%, 수익으로는 상위 3% 안에 든다. 영상 평균 조회 수는 30만을 넘는다.

처음 채널을 시작했을 지난 2020년 10월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광경이다. 처음에 그는 1년 동안 동물 이야기, 네이버 지식인 답변 등으로 콘텐츠를 운영했으나 성장이 더뎠다. 1년여 동안 확보한 구독자는 약 2만명에도 못 미쳤다.

그러다 최 교수가 유튜버로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한 것이 바로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이상한 겁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다. 해당 영상에서 최 교수는 저출산을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풀어낸 내용으로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조회수 230만을 넘기기도 했다. 당시 그는 "주변에 먹을 것이 없고 숨을 곳이 없는데 거기서 애를 막 낳아 주체를 못 하는 동물은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에서는 애를 낳아 키워낼 수 있을까. 이 문제를 개인의 입장에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 누적 구독자 수 추이. /그래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 누적 구독자 수 추이. /그래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해당 영상을 기점으로 최 교수의 과거 영상들까지 재조명받으면서 한 달 만에 구독자가 10만명을 돌파했고, 최근에는 해당 영상을 올린 날보다 구독자 수가 약 25배 뛴 '인기 채널'이 됐다. 이번 팬 미팅 초대권을 포함하는 지난 9월 진행된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에서는 8375만원의 모금액을 모으며 목표치의 1674%를 달성하기도 했다. 모인 금액은 필요 경비를 제외하고 모두 자연 보호에 관한 연구와 사업을 진행하는 생명다양성재단에 기부됐다.

그는 자신의 전문적인 분야를 가지고 사회 다양한 문제를 접근한다는 점에서 대중성까지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화생물학이라는 대중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유튜버로서 최 교수의 성공은 한 전문가가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적절한 뉴미디어 전략을 채택할 경우, 나이나 분야와 상관 없이 제2의 인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함축하기도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행사 끝으로 최 교수는 팬 미팅을 찾은 사람들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면서 직접 쓴 시를 읊었다. 그러면서 "팬 미팅 다시는 안 하렵니다. 명색이 대학교수인데 팬 미팅이 무슨 말입니까"라면서도 "말은 그렇게 하면서 오늘 두 시간 넘도록 너무 뿌듯했습니다. 내가 뭐라고 이런 사랑을 받아야 하나 싶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면서 팬들께 감사의 뜻을 재차 전했다.

마지막에 최 교수는 나가는 모든 관중 한명 한명에게 주먹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으며 배웅했다.
3일 진행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단독 팬미팅에서 최 교수가 행사가 끝나고 나가는 모든 관중에게 주먹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으며 배웅하는 모습. /사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3일 진행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단독 팬미팅에서 최 교수가 행사가 끝나고 나가는 모든 관중에게 주먹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으며 배웅하는 모습. /사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