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남성이 공개한 강제 철거된 레카비의 집. /사진= 트위터 캡쳐
익명의 남성이 공개한 강제 철거된 레카비의 집. /사진= 트위터 캡쳐
지난 10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경기를 치렀다가 실종설에 휩싸인 이란 엘나즈 레카비(33) 선수의 집이 강제 철거됐다고 이란 반정부 성향 온라인 매체 '이란 와이어'가 보도했다.

2일(현지시간) 이란와이어에 따르면 레카비 선수가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 강제 철거 당했다. 소셜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된 영상에서 그의 집은 지붕이 완전히 파괴되고 골조 조차 제대로 남지 않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영상에서는 레카비가 여러 대회에서 받은 메달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레카비의 오빠이자 그와 같은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인 엘나즈 다부드는 영상에서 "정의는 어디에 있느냐"며 울부짖었다.
사진=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 유튜브
사진=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 유튜브
이 같은 일이 벌어진 배경에는 레카비가 지난 10월 10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잠원 한강공원 스포츠클라이밍 특설경기장에서 열린 대회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출전한 데 있는 것으로 이란와이어는 추정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종합 4위에 올랐다. 하지만 대회 마지막 날 돌연 연락이 끊겨 실종설이 제기됐다. 이에 레카비가 히잡을 착용하지 않아 이란 측으로부터 제재를 당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당시 주한 이란대사관은 트위터를 통해 "실종설은 가짜뉴스"라고 강하게 부인하며 "그가 다른 팀원들과 함께 이날 일찍 서울에서 이란으로 출발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각에서는 레카비가 이란 반(半)정부 시위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일부러 히잡을 벗고 경기에 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당시 그는 이란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장비를 챙기느라 바빠서 히잡을 깜빡한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영상을 트위터에 공개한 익명의 남성 A씨는 "레카비의 집이 강제 철거된 건 이 나라에 산 결과"라며 "이 나라를 위해 많은 메달을 딴 챔피언한테 일어난 일"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란 와이어에 따르면 이란 경찰이 주택을 강제 철거했지만 시기가 언제인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레카비의 오빠 다부드는 철거 당시 이란 측의 '위반 사항'을 여겨 약 651만원 (5000달러)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받았다고 한다.

한편 레카비가 지난 10월 한국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뒤 이란 당국으로부터 집요한 괴롭힘을 받아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란와이어는 당시 국가올림픽위원회(NOC)와 체육부 장관이 레카비에게 "출국 또는 언론 인터뷰 진행 시 가족의 땅을 몰수할 것"이라고 을렀다고 보도했다.

이란 당국은 현재 영상의 진위 등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 상태다. 다만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은 "레카비 집이 철거당한 건 맞지만, 이 집이 공식적인 건축 허가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문제의 영상은 레카비가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채 대회에 출전한 지난 10월 이전에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