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툰 사람들', 20대 장진이 만든 코미디극…사랑스러운 또라이들의 수다
등장인물들이 죄다 ‘또라이’다. 도둑질하다가 찾은 현금 2만3000원 중 5000원을 거슬러주는 도둑이나, 이런 도둑에게 고맙다며 비상금을 찔러 주는 집주인이나 다 이상하다. 이런 사람들끼리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상하게도 유쾌하고 사랑스럽다. 장진이 대본을 쓰고 연출한 연극 ‘서툰 사람들’(사진) 얘기다.

이 작품은 서툴고 어설픈 도둑이 어느 아파트에 도둑질하러 들어갔다가 못 빠져나오고, 밤새 집주인과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코미디다. 1995년 초연 당시 20대였던 장진을 이른바 ‘대학로의 스타’로 만든 작품이다. 이후 2007년과 2012년 공연할 때마다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최근 서울 동숭동 예스24스테이지에서 10년 만에 장진이 직접 대본을 다듬고 연출까지 맡아 무대에 올렸다.

엉뚱하고 수다스러운 캐릭터들이 여전히 매력적이다. 새벽에 남의 집에 몰래 들어온 도둑 덕배는 나쁜 짓을 하는 게 분명한데도 왠지 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집주인을 밧줄로 묶긴 하지만 최대한 아프지 않게 묶는 방법을 수첩에 적어오기까지 하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묶지 못할 정도로 서투르다. 집주인 화이는 도둑이 들어온 것보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전화를 건 것에 더 화가 나는 여자다. 각박한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게 엉뚱한 두 사람의 모습은 그래서 더 웃기고 귀엽다. 두 사람이 말싸움하는 모습부터 의외의 결말까지 사랑스럽다.

배우들의 대사가 숨이 찰 정도로 많아 지루할 틈이 없다. 장진 특유의 촌스럽지 않은 세련된 유머가 담겨 있어서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이나 슬랩스틱(신체 개그)이 없는데도 관객들이 공연 내내 웃느라 자지러진다. 남을 놀려서 웃기는 웃음이 아니라 캐릭터의 엉뚱한 모습에서 터져나오는 자연스러운 웃음이다.

30년 가까이 된 대본이지만 장면 곳곳에 요즘 시대에 맞게 수정한 흔적이 엿보인다. 다만 때때로 지금의 감각과 감성에 비춰봤을 때 불편할 만한 대목도 남아 있다.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 문을 열어놓고 남자를 기다리고 있겠다거나, 범죄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다는 대사 등이 나올 땐 객석의 공기가 잠시 멈칫하기도 했다. 공연은 내년 2월 19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