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2000년 전 부모인 마리아·요셉과 함께 유소년 시절을 보낸 곳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 북부 나사렛 성요셉교회 지하 집터. 나사렛=구은서  기자
예수가 2000년 전 부모인 마리아·요셉과 함께 유소년 시절을 보낸 곳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 북부 나사렛 성요셉교회 지하 집터. 나사렛=구은서 기자
“성지 순례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영광스러운 특권이 아닐 수 없다.”

19세기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예루살렘과 막달라 등 기독교 성지를 둘러본 뒤 신문에 이 같은 글을 실었다. 중동의 무더위와 강도는 목숨을 위협했지만 독실한 신앙인에게 성지순례는 예나 지금이나 일생의 소원이다. 트웨인은 같은 배를 탄 순례객의 감동어린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이 신성한 바다를 항해하고 그 주변의 거룩한 땅에 입 맞추는 것. 이것이야말로 얼굴에 주름이 이랑처럼 생기고 머리에 서리를 얹는 동안에 그들이 소중히 간직해온 열망이었다.”

이스라엘이 기독교인에게 특별한 것은 성경 속 ‘약속의 땅’이기 때문이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인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약속은 유대인의 유구한 자부심의 근간인 동시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영토 분쟁의 시작점이 됐다.

예수 탄생부터 죽음까지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지하동굴에 표시된 예수 탄생 지점 앞에서 기도하는 순례객들.  베들레헴=구은서  기자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지하동굴에 표시된 예수 탄생 지점 앞에서 기도하는 순례객들. 베들레헴=구은서 기자
올해 한국·이스라엘 수교 60주년을 맞아 한국 주요 일간지 기자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주요 기독교 성지를 방문했다.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5일간 성경 속 예수 탄생과 죽음, 부활의 현장을 찾았다. 소강석·박요셉·이재훈 새에덴교회 목사가 동행했다. 현지 안내는 성지순례 전문가 이강근 박사가 맡았다.

첫 여정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속한 베들레헴. 6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둘러싸여 총 든 군인들의 검문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다. 그럼에도 성탄절 즈음 전 세계 순례객이 몰려드는 건 이곳에서 약 2000년 전 예수가 태어났다는 믿음 때문이다. 예수탄생교회 지하동굴을 발 디딜 틈 없이 채운 순례객들은 예수 탄생 지점을 표시한 14개 꼭짓점의 은색별 앞에 엎드려 입을 맞췄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뒤 나사렛에서 자랐다. 나사렛 성요셉교회 지하에는 예수가 유소년 시기를 보낸 것으로 알려진 집터가 있다. 보존을 위해 1990년대 중후반부터 유리문을 설치하고 관람객의 출입을 금지했다. 지난달 29일 교회 측은 한국 취재진에게 예수 집터를 약 30년 만에 공개했다. 집터 공간은 유리문을 지나 성인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통로를 약 10m 걸어 내려가야 나온다. 집터의 넓이는 33㎡ 남짓. 소강석 목사는 “예수님이 이렇게 낮은 곳에서 살았다는 걸 보면서 한국교회가 너무 부자고, 나부터 너무 많은 것을 가진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며 “한국교회는 더 낮아지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회에서 약 50m 거리에 성경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를 동정 잉태(남성과의 결합 없이 임신)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장소가 있다. 이를 기념하는 수태고지 교회의 벽면은 세계 각국의 마리아 그림이 수놓았다. 쪽머리를 하고 푸른 한복을 입은 마리아가 색동저고리 차림의 예수를 안고 있는 한국 성화(聖畵)도 만나볼 수 있다.

엔데믹에 성지순례도 기지개

코로나19 팬데믹 초반 ‘백신 모범국’으로 꼽힌 이스라엘은 현재 모든 방역 조치가 해제된 상태다. 입국 시 코로나19 백신 접종증명서나 유전자증폭(PCR)검사 음성확인서 등도 요구하지 않는다.

가나안과 갈릴리호수 등 성지 곳곳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순례객의 기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예수가 세례받은 요단강에서는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이 강물에 들어가 세례 의식을 재현하기도 했다. 텔아비브부터 예루살렘까지 3주간 걸으며 주요 성지를 순례 중이라는 한 호주인은 “어려서부터 성경과 함께 자라 언젠가는 이곳에 와야만 했다”며 “코로나 방역 조치가 풀리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성지가 모여 있는 예루살렘은 여러 종교의 순례객들로 북적였다. 유대교 성전 터인 ‘통곡의 벽’ 앞에서는 전통 모자 ‘키파’를 쓴 유대인들이 기도하고, 바로 옆에 있는 이슬람 황금돔 사원에서는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하루 다섯 번 울려 퍼졌다. 여기서 10분 거리의 ‘비아 돌로로사(십자가의 길)’에서는 예수처럼 십자가를 지고 걸으며 기도하는 천주교 신부와 그를 뒤따르는 신자들을 마주쳤다. 테러 위험을 막기 위해 관광지 곳곳에는 총 든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피니 샤니 이스라엘 관광부 수석차관보는 “이스라엘을 찾는 한국인들은 어떤 종교를 가졌든 굉장히 의미 있는 방문이 될 것”이라며 “올해 이스라엘을 방문한 전 세계 관광객은 약 210만 명으로 팬데믹 전의 85%까지 회복될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베들레헴·나사렛·예루살렘=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