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동개혁 유인책' 제시할 때다
윤석열 정부가 민주노총 파업에 초강경 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우조선 하청 노조 농성을 공권력 투입 대신 중재로 해결하던 때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돌아보면 김문수 씨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할 때부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던 것 같다.

보수 정부 아래에서 노정 충돌이 특별한 사건은 아니다. 26년간 이어진 연례행사에 가깝다. 1995년 출범한 민주노총은 그다음 해 김영삼 정권 퇴진을 내걸고 총파업에 돌입했다. 정부 역시 노조 간부를 대거 구속하며 강경하게 맞섰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2009년 쌍용차 점거 파업과 강제 해산 이후 4년 내내 노정이 충돌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철도파업, 민주노총 압수수색, 탄핵 촛불시위 등으로 양쪽이 외나무다리에서 대치했다. 지난달부터 극렬해진 노정 갈등도 이전과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

진보 정부 아래에서도 노정 충돌은 항상 있었다. 다만 보수 시기와는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는데, 갈등이 정치적으로 비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은 정권 심판 같은 반정권 구호를 내걸지 않는다. 그리고 민주당은 선거 때가 되면 민주노총을 만나 요구를 수용한다. 양쪽은 절대로 ‘헤어질 결심’까지 가지 않는다.

보수 정부와 민주노총이 태생적으로 어울리기 힘들다는 것은 명확하다. 한국의 보수는 해방 후부터 완고한 반공주의자였다. 또한 능력에 따른 불평등을 긍정하는 엘리트주의 경향이 다분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에는 1980년대 형성된 친북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큰 지분을 가지고 있다.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교섭력이 약한 미숙련 노동자가 단체행동을 통해 교섭력을 확보하는 조직이다. 둘은 특별한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지 않는 이상 상호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민주노총과 충돌할 운명이었다. 민주노총에는 전 정부 때의 관성이 남아 있다. 더군다나 현재 집행부는 1995년 이후 가장 친북적이다. 이런 조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고통을 동반하는 노동개혁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없던 불만도 생기는 시절이다.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은 이중정부라도 꾸릴 기세로 대통령과 맞선다. 그야말로 ‘정치투쟁’하기 좋은 시기에 정부와 민주노총이 부딪쳤다.

최근 정치·경제 상황을 두고 25년 전 국가 부도 직전과 비슷하다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반도체 수출 감소, 역대급 무역적자, 완연한 경기 침체, 여야 극한 갈등, 민주노총 총파업 등. 당시 김영삼 정부는 현 정부와 비슷하게 노동개혁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꺼냈다. 하지만, 야당이 국회를 틀어막은 상태에서 날치기로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가, 민주노총 총파업과 국민적 비판에 직면해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아마 그때 국민적 지혜를 모아 개혁에 성공했다면 국가 부도라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노동개혁은 국민 대부분이 필요성에 동의한다. 하지만 필요성이 실행 가능성을 담보하진 않는다. 역사적으로 수없이 검증된 바다. 윤 정부가 중도층과 평범한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민주노총과 민주당은 반정권 전선에서 뭉칠 것이다. 노동개혁도 물건너간다. 25년 전과 비슷하다. 이제 대통령이 여우의 지혜를 가지고 국민을 설득할 때다. 힘만 가지고선 안 된다. 개혁에 참여할 유인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