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8강 진출 가능성, 美물가 2% 달성 확률보다 높다?
만약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이렇게 얘기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능하겠어?"라고 반문할 겁니다.
하지만 미국시간으로 5일, 한국시간으로 6일에 있는 브라질과의 16강에서 승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2002년 때처럼 기대를 섞어 '꿈은 이루어진다'고 맞장구라도 칠 수 있을 겁니다. 질문을 바꿔 연달아 월드컵 16강에 탈락한 독일이나 아예 월드컵 본선에 두 번 내리 떨어진 이탈리아가 월드컵 우승을 하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일단 "16강이나 진출하고 얘기해"라거나 "일단 월드컵에나 나오라"라는 답이 돌아올 가능성이 큽니다. 잊혀진 우승 후보들의 허황된 목표가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미 중앙은행(Fed)의 물가 목표제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Fed는 9%를 찍고 이제서야 7%대로 내려온 물가상승률을 2%로 끌어내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개인소비지출(PCE) 기준 2%이기는 하지만 현실은 호락하지 않습니다. 독일이나 이탈리아에 걸출한 월드스타나 특급 조커가 사라진 것처럼 미국의 저금리, 저물가를 도왔던 나라들도 이젠 더 이상 미국 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우리의 물가 목표는 2%"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021년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전만 해도 2% 시대였다는 것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때마침 그 미련이 현실적인 지를 가려줄 수 있는 지표가 이번 주에 나옵니다. 미국 인플레이션의 선행지수 역할을 하는 지표들입니다.
Fed의 2% 물가 목표제를 중심으로 이번 주 주요 쟁점과 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파월, 2% 고집하는 이유
물가 목표 2%는 파월 의장의 18번 발언 중 하나입니다. 공식 행사에서 "인플레이션 목표치 2%를 달성하기 위해 아직 갈 길이 멀다"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브루킹스 연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2% 신봉론자는 파월 뿐만이 아닙니다. 현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구성원들 뿐 아니라 전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 물가목표를 처음 도입한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이 대표적 인사입니다. 그는 올 10월 노벨 경제학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 "2% 물가 목표제를 변경하는 건 Fed의 신뢰도를 위해 좋지 않다"고 일갈했습니다.
Fed가 2% 수치를 고집하는 건 한때 현실적인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불과 지난해 팬데믹 이전엔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2% 아래였습니다. 팬데믹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많이 풀었다 하더라도 2% 목표는 가야할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목표나 방향일 뿐이지 늘 달성해야 할 수치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버냉키 전 의장도 "2%라는 목표치는 중기 목표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며 "항상 충족될 필요가 없고 6개월 이내에 충족될 필요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파월 의장도 이런 점을 반영해 2020년 잭슨홀 회의 때 "2%에서 벗어나더라도 평균적으로 2%에 도달하면 된다"는 평균 물가목표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2%라는 목표를 버리는 순간 잃는 게 더 많다고 판단해 이 목표를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신뢰도 상실하고 "Fed가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구나"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플레 2%는 허황된 목표"
미국이 저금리, 저물가 시대에 살 수 있었던 건 특급 도우미가 있었습니다. 중국과 멕시코가 주인공입니다.중국의 저가 물건과 멕시코의 저렴한 노동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오랜 기간 골디락스 시대를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옛날로 돌아가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시진핑 정부의 산아 제한과 제로 코로나 같은 통제 정책으로 과거와 같은 중국의 대량 생산체제는 재현되기 쉽지 않습니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이 담당하던 글로벌 분업 체계의 한 축도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의 싼 노동력이 공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강화돼온 반(反) 이민정책 때문입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도 이 방향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백인과 다른 소수 민족들의 반대 탓입니다. 팬데믹 이후 빡빡해진 노동시장이 바뀌려면 이민자들이 대거 들어와야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오히려 순이민자 수는 감소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독일과 일본, 한국 등 미국의 우방국들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이 대규모 적자를 내고 이 국가들이 대규모 흑자를 거뒀습니다. 그 국가들의 이익은 다시 미국 자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와 증시와 채권시장의 자금줄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들 국가들도 인플레이션의 늪에 빠지고 무역적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물가 목표 2%로 되돌아가기 위해선 이 세 조건이 복원돼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더욱 요원해졌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입니다.
세계화라는 질서는 사라졌습니다. 양대 진영으로 갈린 신 냉전이 본격화했습니다. 러시아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도 민주 진영과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저렴한 상품과 저임금 인력, 대규모 자본이 모두 이탈한 상황에서 2% 물가를 달성하기 쉽지 않습니다.
CPI 선행지표 잇따라 발표
인플레 2%가 실현 가능한 목표인 지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이번 주에 연달아 나옵니다. 생산자물가지수(PPI)와 미시간대 기대 인플레이션율입니다. 공교롭게 9일에 모두 공개됩니다.두 지표는 13일에 발표되는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선행지수 역할을 합니다. 생산자 물가는 고스란히 소비자 물가에 전가되고 기대 인플레는 수요 측면을 움직여 소비자 물가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PPI는 하락 추세입니다. 올 3월에 11.7%로 정점을 찍었다가 7월부터 떨어져 10월에 8%로 내려왔습니다. 11월엔 7% 초반대로 더 떨어질 것으로 시장에서는 내다보고 있습니다. 금리 결정에 절대적 변수인 11월 CPI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전망입니다. 문제는 기대 인플레입니다. CPI와 PPI는 하락세인데 기대 인플레가 최근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Fed가 더 중시하는 장기 기대 인플레에서 그런 추세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물론 장기 기대 인플레 상승을 경기침체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인플레이션 불안심리를 더 자극할 수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미시간대가 발표하는 기대 인플레 수치에 따라 실제 인플레 방향이 좀더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Fed보다 먼저 움직이는 국가들도 변수
Fed는 14일로 예정된 12월 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폭을 75bp(1bp=0.01%포인트)에서 50bp로 줄인다는 게 기정사실이 돼가고 있습니다.금리 인상폭을 결정할 변수라는 측면에서 보면 전날 발표되는 CPI도 중요하지만 다른 나라 정책 결정도 참고 사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보다 먼저 금리 인상폭을 줄인 캐나다와 호주, 노르웨이 등이 대표적입니다. 공교롭게도 호주(6일)와 캐나다(7일)가 이번 주에 통화정책 결정 회의를 엽니다. 호주중앙은행은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6월부터 9월까지 4회 연속 기준금리를 50bp씩 인상했습니다. 그러다 10월과 11월엔 기준금리를 25bp씩만 올렸습니다. 이번에도 베이비 스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시장에선 전망하고 있습니다. 캐나다도 긴축 속도를 늦추고 있습니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지난 6월 물가상승률이 8.1%로 급등하자 한 달 뒤 기준금리를 연 1.5%에서 연 2.5%로 인상했습니다. 이후 인플레이션이 조금씩 진정되자 금리 인상 폭을 9월에 75bp로 줄인 뒤 10월에 50bp로 완화했습니다. 이번엔 50bp나 25bp로 선택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미국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들이 긴축 속도를 완화하고 있습니다. 물가상승률이 정점을 찍고 조금씩 완화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2%까지 내려갈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내년이나 내후년에 3~5%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극적으로 미국 인플레가 옛날처럼 2%로 복귀할 확률도 있습니다. 기준금리를 다시 확 올리면 됩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게 세상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스톤엑스 파이낸셜의 빈센트 들루어드 거시전략 총괄이 잘 설명했습니다. 빈센트 총괄은 "파월 의장이 폴 볼커 전 의장처럼 기준금리를 10%까지 올린다면 인플레이션율이 2%로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면 노동시장이 완전히 박살나는데 무슨 소용이 있냐"고 반문했습니다.
차라리 기준금리를 3~4%로 유지하는 가운데 3~5%의 인플레 속에서 성장률을 더 끌어올리는 게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 축구가 다음 월드컵에서 곧바로 우승하길 바라기보다 일단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 16강과 8강에 오른 뒤 옛 영광을 되찾는데 주력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점과 흡사합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