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처음으로 '경기 후퇴'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물가를 낮추기 위해서라면 급격하게 금리를 인상하는 의도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3일(현지 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선진국 중 가장 먼저 금리를 인상했던 뉴질랜드 중앙은행(RBNZ)은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경기침체를 일으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RBNZ는 지난주 기준금리를 연 4.25%로 0.75%포인트 올렸다. WSJ은 '덜 매파적인(less hawkish)' 금리 인상을 예상했던 경제 전문가들을 놀라게 한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뉴질랜드 의회는 RBNZ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두고 중앙은행이 의도적으로 경기 후퇴를 계획하고 있는지를 물었고, 아드리안 오르 RBNZ 총재는 "맞다"고 답했다. 오르 총재는 "우리는 의도적으로 경제 총지출을 늦추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빨리 내려올수록 중앙은행이 해야 할 일이 줄어들고, 저성장 기간이 길어질 가능성도 떨어진다는 논리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 은행(BOE) 관계자도 경기침체를 언급했다. 스와티 딩그라 BOE 통화정책위원은 영국 매체 업저버와의 인터뷰에서 "경기침체가 심화하고 장기화하는 것을 피하려면 BOE의 기준금리가 연 4.5% 이하로 정점을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BOE의 기준금리 인상이 연 4.5% 아래에서 정점을 찍어야 한다면서 "시장은 이 수준의 금리가 영국 경제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OE는 지난달 통화정책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해 연 3.0%까지 올렸다. 이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딩그라 위원은 "현재 속도로 긴축이 계속된다면 불황을 연장하고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며 "브렉시트가 영국의 생계비 위기를 몰아왔고, 식료품 가격 급등에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도 경기 후퇴를 예상하는 의견이 우세하다. 경제 조사기관 컨센서스 이코노믹스는 내년 미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평균 0.2%로 예상했다. 이는 1989년 이후 세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WSJ의 자체적인 정기 설문 조사에 따르면 경제학자의 63%가 내년에 경기후퇴가 올 것으로 내다봤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또한 경제학자들과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국내총생산(GDP)이 서너 분기 안에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11월 의사록에는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경기후퇴라는 단어가 포함됐다.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싱크탱크인 블랙록 인베스트먼트 인스티튜트의 앨릭스 브레이저 부소장은 "연준이 근원 물가 상승률을 목표인 2%까지 낮추려면 경기후퇴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