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봉한 ‘복지식당’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한 마지막 대사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장애인이 된 청년이 취업을 하고, 전동 휠체어를 구하는 내용, 무엇보다 살아남기 위해 처음보다 높은 장애등급을 받아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더 높은 장애등급을 판정받아야 하는 아이러니.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이가 살아가는 방식을 가장 처절하고 불편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장애를 보는 시선은 이처럼 명확하다. 참…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편한 방법으로 그들을 돕고 있다.
각종 요금 감면, 생활비 지원도 중요하지만 재능 발견과 자활 터전을 마련해주는 일이 우선시돼야 한다. 언제까지나 보호만 한다면 그들은 사회에 구성원으로 합류하기보단 늘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단순한 기능 발현에 그칠 것이다.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고용률은 2021년 기준 전체 인구 61.2%의 절반 수준인 34.6%에 불과하다. 중증장애인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고용률은 경증장애인의 절반 수준이며, 장애인 취업자 중 단순노무 종사자가 38.6%로 가장 많다. 진정한 능력 개발이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수치다.
지적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겪는 그들에게 다른 능력을 키우기란 혼자서는 벅찬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적극 찾아내 개발하고 발전시켜 자활로 이어지도록 만들어주는 일이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애인은 우리와 아주 다른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필자는 다른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전 서구청장으로 재임할 때 장애아동재활지원센터를 건립했다. 당시 지방자치단체에서 유일하게 운영하는 센터였다. 당연히 설립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장애는 누구나 잠재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인데 이기주의와 배타주의로 사회가 이를 외면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그러나 이를 외면하면 언젠가 그 부담이 크게 불어나 사회에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장애인 복지는 다각도에서 진행돼야 한다.
발달장애를 지닌 자녀를 둔 부모의 소원은 아이보다 하루만 더 오래 사는 것이다. 보호막 없이, 자립할 힘도 없이 세상에 내몰릴 아이를 생각할수록 부모의 소원은 한없이 간절해진다. 장애를 가진 모든 이가 자활을 통해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