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선임 절차가 본격화한 가운데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금융권 인사들이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업계에선 ‘올드보이’의 귀환을 놓고 ‘관치 금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업에서 수년간 손을 뗀 일부 인사는 빅테크와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 금융회사의 긴박한 경영환경에 대응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관료 출신 영입하는 농협금융

6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63)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내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취임 이후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연임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많았던 손병환 회장(60)은 농협금융 지분 100%를 보유한 농협중앙회가 관료 출신을 낙점하면서 연임이 무산됐다.

금융권에선 농협중앙회가 정권 교체 이후 정부와의 소통 강화 차원에서 관료 출신을 영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12년 농협금융 출범 이후 내부 출신은 신충식 초대 회장과 손 회장 두 명뿐이다. 농협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농협중앙회장의 연임을 허용하는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가운데 정부·여당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농협금융 회장 교체를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총자산이 500조원에 달하는 농협금융을 이끌게 된 이 전 실장은 행정고시 26회로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위원회 상임위원과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 때도 기획재정부 2차관과 국무조정실장(장관급)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캠프를 거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특별고문으로도 참여했다.

BNK·우리·기업은행도 ‘외풍’

부산에 기반을 둔 BNK금융지주도 올드보이들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 4대 천왕’으로 불린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78)을 비롯해 BNK금융 사외이사를 지낸 김창록 전 산업은행 총재(73) 등이 대표적이다. BNK금융은 통상 재임 기간을 70세까지로 제한한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회장직에 나이 제한이 없다. 행시 33회 출신으로 한국자금중개 사장 등을 지낸 이현철 우리카드 감사(57)는 금융위 전직 간부들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BNK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오는 13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9명 등 내부 후보군과 외부 후보군 10명을 포함한 롱리스트(잠정 후보군)를 확정할 방침이다. 부산은행 노조와 금융노조 등은 임추위 전날인 12일 ‘낙하산 인사 반대’ 기자회견을 연다.

손태승 회장(63)이 거취를 두고 장고에 들어간 가운데 우리금융지주 차기 회장 후보로는 이명박 정부 시절 기업은행장을 지낸 조준희 전 YTN 사장(68)을 포함한 전직 금융 관료들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조 전 사장은 BNK금융지주 회장 후보로도 거론된다. 그는 윤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직능본부 금융산업지원본부장을 맡았다.

기업은행은 내년 1월 초 임기가 끝나는 윤종원 행장 후임으로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61)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정 전 원장은 편법 취업 논란도 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퇴직 후 3년 이내에 재취업하는 경우 공직자윤리위원회 승인을 거쳐야 하지만 시중은행과 경쟁하면서도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된 기업은행은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 기업은행 노조는 “법률상 맹점을 악용한 낙하산 인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신용정보협회장(나성린 전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여신금융협회장(정완규·행시 34회), 보험개발원장(허창언 전 금감원 부원장보), 예금보험공사 사장(유재훈·행시 26회) 등 금융 공기업과 협회에도 퇴직 관료와 정치인이 잇달아 임명되면서 ‘금융권 인사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뒤집히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