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보면 안다, 동물도 사람같은 감정 가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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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헝가리 수교 33주년
사비나 미술관, 보르시展
93년생 여성 사진가의 파격
작품의 연출자이자 주인공
애완견과 하나되려 하얗게 분장
금붕어 모방하려 주황색 염색도
15세때 암 진단 후 작품 활동
반려견과 사진 남기다 아이디어
"인간과 다른 종 사이 공통점 표현"
사비나 미술관, 보르시展
93년생 여성 사진가의 파격
작품의 연출자이자 주인공
애완견과 하나되려 하얗게 분장
금붕어 모방하려 주황색 염색도
15세때 암 진단 후 작품 활동
반려견과 사진 남기다 아이디어
"인간과 다른 종 사이 공통점 표현"
여인이 한쪽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하지만 눈을 맞출 겨를이 없다. 동물 얼굴에 가려져 있는 또 다른 여인의 눈을 찾기 위해서다. 가려진 눈의 자리에는 개와 백조 등의 눈이 있다. 동물의 눈에서 여인의 나머지 눈을 찾아보다 결국은 지쳐서 깨닫는다. 동물의 눈에도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생명과 감정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헝가리 출신 현대사진가 플로라 보르시(29·사진)는 사람과 동물의 얼굴을 겹치면서 눈의 위치를 동일선상에 두는 연작 작품들로 한국 화랑의 문을 처음 두드렸다. 보르시는 헝가리가 낳은 세계적 사진가 로버트 카파, 앙드레 케르테츠, 브라사이의 계보를 잇는 신예 사진작가이자 비주얼 아티스트로 꼽힌다. 독특한 주제와 신비한 풍경, 은유적인 장면들을 연출해 실제와 상상의 경계를 융합하는 게 특징이다.
보르시는 지난달 30일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서 개막한 ‘애니마이드(ANIMEYED)’ 전시에 총 47점의 작품을 들고나왔다. 전시 제목은 동물을 뜻하는 ‘애니멀(animal)’과 눈 ‘아이(eye)’의 합성어. 인간과 동물이 눈맞춤한 작업의 큰 테마를 하나로 압축하는 단어다. 개막을 앞두고 줌으로 만난 보르시는 “애니마이드 연작을 통해 인간과 동물이 하나가 되는 동시에 각자의 아름다움이 최대한 잘 드러나도록 연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보르시의 모습은 그의 모든 작품에 등장한다. ‘사진 자화상’을 기본으로 동물과의 합체를 시도한다. 기획 감독 배우 시나리오 편집 등의 역할을 모두 혼자 한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동물은 소형견부터 대형견, 백조와 흑조, 나비와 금붕어, 문어에 이르기까지 종과 크기가 다양하다. 보르시는 동물 종의 형태적, 생물학적 속성을 연구하고 그에 따라 후반 작업 과정까지 모두 염두에 두고 작업한다.
그는 작품 속에서 연출자이자 주인공이다. 작가 자신이 줄곧 특수 분장을 한다. 금붕어를 모방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주황색으로 염색하고, 흰 비둘기와 일치하도록 얼굴을 하얗게 색칠하는 식이다. 정교한 스튜디오 촬영이 끝나면 그 후엔 포토샵 프로그램을 활용한 디지털 회화 작업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그는 “11세 때 웹디자이너였던 친척에게 포토샵 프로그램을 선물받아 디지털 회화를 독학으로 연구했다”며 “컴퓨터로 이뤄지는 두 번째 창작 과정을 통해 초현실적 예술 세계를 더 정교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이는 그의 사진 자화상 속엔 아픈 사연도 있다. 15세 때 암진단을 받고 우울증까지 얻은 그는 “살아남기만 한다면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자신의 정체성을 여러 사진 작품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우연히 반려견 ‘데조’와 함께 영상을 찍다가 ‘애니마이드’ 연작 아이디어를 얻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얼마나 다채로운지, 다른 종 사이에서도 얼마나 많은 공통점이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동물보호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동물실험 등 다큐멘터리 성격의 사진을 찍었는데 오히려 너무 혐오스럽고 자극적이어서 제대로 소통할 수 없었죠. 눈맞춤 시리즈는 표정을 통해 감정과 메시지, 분위기까지 전달할 수 있는 데다 동물의 모든 디테일을 아름답게 살릴 수 있어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자신의 반려견을 제외한 다른 희귀 동물들은 온라인상 이미지를 내려받아서 활용한다. 동물을 착취하거나 예술을 위해 악용하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그는 “내 초상 사진을 찍고 나머지 동물은 합성과 후반 작업으로 완성한다”고 말했다.
보르시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모호이너지 예술디자인대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미국 스웨덴 중국 터키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2014년 어도비 포토샵 프로그램 표지 작가에 선정되고, 2016년 아메리칸 아트 어워드 1위를 수상했다. 2020년 미국 포브스가 뽑은 30세 미만 아티스트 30인에 선정됐고, 지난해 전 세계 여성 사진작가를 대상으로 한 ‘핫셀블라드 히로인’으로 뽑혔다.
전시를 기획한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20대 작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해왔고,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독창적인 미학을 만들어낸 사진가”라고 평가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6일까지.
김보라/이선아 기자 destinybr@hankyung.com
헝가리 출신 현대사진가 플로라 보르시(29·사진)는 사람과 동물의 얼굴을 겹치면서 눈의 위치를 동일선상에 두는 연작 작품들로 한국 화랑의 문을 처음 두드렸다. 보르시는 헝가리가 낳은 세계적 사진가 로버트 카파, 앙드레 케르테츠, 브라사이의 계보를 잇는 신예 사진작가이자 비주얼 아티스트로 꼽힌다. 독특한 주제와 신비한 풍경, 은유적인 장면들을 연출해 실제와 상상의 경계를 융합하는 게 특징이다.
보르시는 지난달 30일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서 개막한 ‘애니마이드(ANIMEYED)’ 전시에 총 47점의 작품을 들고나왔다. 전시 제목은 동물을 뜻하는 ‘애니멀(animal)’과 눈 ‘아이(eye)’의 합성어. 인간과 동물이 눈맞춤한 작업의 큰 테마를 하나로 압축하는 단어다. 개막을 앞두고 줌으로 만난 보르시는 “애니마이드 연작을 통해 인간과 동물이 하나가 되는 동시에 각자의 아름다움이 최대한 잘 드러나도록 연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보르시의 모습은 그의 모든 작품에 등장한다. ‘사진 자화상’을 기본으로 동물과의 합체를 시도한다. 기획 감독 배우 시나리오 편집 등의 역할을 모두 혼자 한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동물은 소형견부터 대형견, 백조와 흑조, 나비와 금붕어, 문어에 이르기까지 종과 크기가 다양하다. 보르시는 동물 종의 형태적, 생물학적 속성을 연구하고 그에 따라 후반 작업 과정까지 모두 염두에 두고 작업한다.
그는 작품 속에서 연출자이자 주인공이다. 작가 자신이 줄곧 특수 분장을 한다. 금붕어를 모방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주황색으로 염색하고, 흰 비둘기와 일치하도록 얼굴을 하얗게 색칠하는 식이다. 정교한 스튜디오 촬영이 끝나면 그 후엔 포토샵 프로그램을 활용한 디지털 회화 작업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그는 “11세 때 웹디자이너였던 친척에게 포토샵 프로그램을 선물받아 디지털 회화를 독학으로 연구했다”며 “컴퓨터로 이뤄지는 두 번째 창작 과정을 통해 초현실적 예술 세계를 더 정교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이는 그의 사진 자화상 속엔 아픈 사연도 있다. 15세 때 암진단을 받고 우울증까지 얻은 그는 “살아남기만 한다면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자신의 정체성을 여러 사진 작품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우연히 반려견 ‘데조’와 함께 영상을 찍다가 ‘애니마이드’ 연작 아이디어를 얻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얼마나 다채로운지, 다른 종 사이에서도 얼마나 많은 공통점이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동물보호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동물실험 등 다큐멘터리 성격의 사진을 찍었는데 오히려 너무 혐오스럽고 자극적이어서 제대로 소통할 수 없었죠. 눈맞춤 시리즈는 표정을 통해 감정과 메시지, 분위기까지 전달할 수 있는 데다 동물의 모든 디테일을 아름답게 살릴 수 있어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자신의 반려견을 제외한 다른 희귀 동물들은 온라인상 이미지를 내려받아서 활용한다. 동물을 착취하거나 예술을 위해 악용하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그는 “내 초상 사진을 찍고 나머지 동물은 합성과 후반 작업으로 완성한다”고 말했다.
보르시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모호이너지 예술디자인대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미국 스웨덴 중국 터키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2014년 어도비 포토샵 프로그램 표지 작가에 선정되고, 2016년 아메리칸 아트 어워드 1위를 수상했다. 2020년 미국 포브스가 뽑은 30세 미만 아티스트 30인에 선정됐고, 지난해 전 세계 여성 사진작가를 대상으로 한 ‘핫셀블라드 히로인’으로 뽑혔다.
전시를 기획한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20대 작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해왔고,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독창적인 미학을 만들어낸 사진가”라고 평가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6일까지.
김보라/이선아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