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보존해야" vs "주민 생명권 보장을"
인천 부평미군기지 내 일제 병원 철거 놓고 갈등 심화
일제강점기 일본군 무기공장 '조병창'의 병원으로 쓰인 인천 부평미군기지(캠프마켓) 내 건물 철거를 놓고 갈등이 커지고 있다.

8일 인천시 등에 따르면 지난 6일 시 주관으로 열린 조병창 건축물 현안 소통간담회에서 참석자 사이에서는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를 둘러싼 이견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찬성 측은 오염된 캠프마켓 토양을 제대로 정화하려면 병원 건물 철거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캠프마켓 부평숲 주민추진위원회'는 "주민 생명권이 걸린 문제는 어떤 것도 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건물 철거 후 오염된 토양을 신속히 정화해 시민들을 위한 자연생태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반대 측은 조병창 병원 건물이 지닌 역사적·공간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건물 보존을 요구하는 '일본육군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는 "조병창 병원 건물은 1940년대 일제 침략과 강제노역의 역사적 현장이자 흔적"이라며 "역사·문화적 유산으로서 반드시 존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천 부평미군기지 내 일제 병원 철거 놓고 갈등 심화
캠프마켓 남측 B구역에 있는 1천324㎡ 규모의 조병창 병원 건물은 철거 논의가 있을 때마다 지역 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의 무기 제조공장으로 쓰이던 인천 조병창은 국내 강제 동원의 대표적 시설이다.

조병창 병원은 당시 강제 동원된 노무자를 위한 의료시설이었다.

앞서 이 건물은 하부 토양에서 오염 우려 기준(500㎎/㎏)을 초과한 석유계총탄화수소(TPH) 농도가 측정되며 존치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에는 국방부가 건물을 철거한다고 나섰다가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철거 시작 사흘 만에 작업을 잠정 중단했다.

이에 철거를 원하던 주민들이 1인 시위를 하며 강한 불만을 표출하는 등 어느 한쪽도 쉽게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인천 부평미군기지 내 일제 병원 철거 놓고 갈등 심화
이 사안은 그동안 관계기관별 입장도 실타래처럼 얽혀 풀리지 않는 난제였다.

토양정화 책임자인 국방부는 "완벽한 정화 작업을 하려면 병원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문화재청은 "반드시 보존해 향후 면밀한 조사 및 연구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며 상반된 입장을 보기도 했다.

인천시는 국방부·문화재청과 3자 논의 과정에서 건물 원형을 보존하면서 법이 정한 기간인 2023년에 맞춰 토양 정화를 끝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시는 건물을 철거하되 주요 부자재 보존과 기록화 작업 등으로 병원 건물의 가치를 최대한 보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민간 합의를 끌어내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인천시는 앞으로 찬반 단체별 대표자 4명씩 8명과 참관인 4명 등 총 12명 이내로 참석 인원을 정해 소통간담회를 진행할 방침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소통간담회를 열어 주요 단체들의 이견을 좁히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다음 소통간담회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