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투자가 망설여지는 이유 중 하나는 어렵다는 것이다. 용어부터가 생소하다. 하나의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단어를 찾아봐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바이오 용어(꼬.꼬.바)’에서 낯선 제약·바이오 관련 용어를 알기 쉽게 풀어본다.[편집자주]
티쎈트릭은 2016년 전이성 방광암에 대한 1차 치료제로 가속 승인됐다. 시스플라틴 화학요법이 적합하지 않거나, PD-L1 상태와 관계없이 백금을 포함한 화학요법에 적합하지 않은 전이성 방광암 환자가 치료 대상이었다.(11월 30일 기사)
화이자는 7일(현지시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백신 후보물질 ‘RSVpreF’의 품목허가신청(BLA)을 접수하고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12월 8일 기사)

의약품의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항암제의 경우 환자의 생존율을 높인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수 년 이상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그러나 품목허가를 위한 장기 임상은 치료법이 부족한 환자들의 치료 기회를 빼앗는 상황이 됩니다. 규제당국이 의약품의 승인 여부를 심사하는 기간조차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너무 길게 느껴질 겁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의약품을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들을 만들었습니다. 가속승인(Accelerated Approval)과 우선심사(Priority Review)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확증 임상 전에 시판을 허가하는 가속승인

9일 업계에 따르면 FDA는 1992년부터 가속승인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의약품의 효과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임상 3상 완료 전에 임상적 이점을 증명하는 경우, 시판을 허가하는 제도입니다.

가속승인은 품목허가 심사 경로의 일종입니다. 패스트트랙, 혁신치료제, 우선심사와 달리 ‘지정(designation)’의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FDA는 기업이 개발 초기에 임상 계획 및 가속승인 적격 여부, 대리 지표(surrogate endpoint) 사용 등에 대해 FDA와 충분히 소통할 것을 권합니다.

대리 지표는 임상적 이점을 예상케 하는 간접적 지표를 말합니다. 항암제 투여 후 종양 크기 감소나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 투여 후 혈중 바이러스 양(viral load) 감소 등이 대리 지표로 인정받았습니다.

가속승인은 심각한 미충족 의료 수요를 충족시키는 의약품에 적용됩니다. 패스트트랙 지정 요건과 일치합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지정 의약품이 모두 가속승인의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FDA는 별도로 가속승인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명기하고 있습니다.

주로 병의 경과가 길거나 약물의 임상적 이점을 측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약물에 가속승인 제도가 사용됩니다.

가속승인은 3상 조건부

가속승인 신청이 반려되는 이유로는 임상적 이점에 대한 불확실성, 발견되지 않은 위험의 가능성 등이 있습니다. 대체 치료제가 있는 경우에도 가속승인이 거절될 수 있습니다. 가속승인을 받지 못한 약은 임상 3상을 거쳐 정식 품목허가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가속승인을 받은 약은 판매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임상 3상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임상적 이점을 제대로 검증하기 위해 3상을 수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임상이 진행되지 않거나 3상에서 이점을 증명하지 못하면 FDA는 승인을 철회할 수 있습니다.

FDA가 1993년부터 작년 말까지 가속승인한 항암제의 167개 적응증 중 14개는 FDA와의 논의 후에 기업에서 자진 철회했습니다. 1개는 FDA에 의해 취소됐습니다.

로슈의 면역항암제 ‘티쎈트릭’도 방광암 적응증을 자진 철회한 사례입니다. FDA는 임상 2상 결과를 근거로 2016년 티쎈트릭을 전이성 방광암 치료제로 가속승인했습니다.

당시 대리 지표로 암의 크기 변화를 측정한 객관적반응률(ORR) 및 반응지속기간(DoR) 등이 사용됐습니다. ORR은 암의 크기가 줄어든 환자의 비율, 반응지속기간은 암 크기가 줄어든 환자에서 암이 다시 커지거나 전이되지 않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티쎈트릭은 가속승인 이후 진행된 임상 3상에서 1차 평가지표 중 하나였던 전체생존기간(OS)의 통계적 유의성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로슈는 FDA와 논의 후 방광암 적응증을 취소했습니다.

대리 지표를 활용한 가속승인 중 주목받은 또다른 사례는 바이오젠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아두헬름’이 있습니다.

아두헬름은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의 응집을 막는 약입니다. 바이오젠은 뇌 속에 쌓인 아밀로이드베타가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라는 가설을 근거로 아두헬름을 개발했습니다. 아두헬름은 임상에서 인지능력 개선 효능을 입증하지 못했지만, 아밀로이드베타 덩어리(플라크) 감소라는 대리 지표로 작년 6월 FDA에서 가속승인을 받았습니다.

심사기간 단축하는 우선심사

우선심사의 혜택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FDA가 품목허가 심사를 6개월 이내에 마치는 것입니다. FDA 처방의약품신청자수수료법(PDUFA)에 따른 심사 기간은 통상 10개월입니다. 즉 약 4개월 빨리 결과를 알려줍니다.

우선심사 지정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심각한 질환의 치료, 진단 또는 예방에 대한 상당한 개선을 입증해야 합니다. 신청자는 품목허가를 신청하며 우선심사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FDA는 신청 또는 유효성 보충 자료를 받은 후 60일 이내에 우선심사 지정 여부를 통보합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의약품 시장입니다.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FDA와 관련된 신청 및 지정 소식에 제약바이오 투자자들이 귀를 기울이는 이유입니다.

FDA는 다양한 제도로 신약개발을 지원합니다. 각 제도마다 필요한 조건과 주어지는 혜택 등이 다릅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효능과 안전성 입증입니다. 이를 규제당국 및 시장에 증명하지 못하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아두헬름은 블록버스터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될 것이란 기대가 컸지만, 지속되는 효능 논란에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습니다.

박인혁 기자 hy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