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여전히 매력적"
亞 재력가 구매력 막강
홍콩 지리적 위치도 최적
상위 1% 슈퍼리치 굳건
대부분 자산 묶여 있어
해외로 이탈 크지 않아
경매 큰 손도 2030세대
하지만 지난달 30일 찾은 홍콩 컨벤션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은 이런 인식을 무색하게 했다. 세계 경제에 드리운 불황의 그림자에도 수억~수십억원대 작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며 곳곳에서 작가 최고가 경신이 잇달았다. 온몸에 명품을 휘감은 20·30대 ‘큰손’ 들은 거침없이 손을 들어 호가를 높였다. 올해 크리스티 홍콩 경매 매출은 1조원 이상.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상반기에 비해 46% 증가했다. 3년 만에 다시 화려하게 축포를 쏘아올린 홍콩 미술시장을 통해 현지 경기를 들여다봤다.
“홍콩, 단점은 있지만 위치가 너무 좋아”
지난 9월 홍콩은 모든 입국자를 호텔에서 3~7일간 의무 격리하는 제도를 폐지했다. 물론 여전히 홍콩 방역정책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입국자는 3일간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 밥을 굶지 않으려면 호텔 룸서비스나 식당의 포장·배달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입국 7일차까지 매일 코로나19 자가검사 후 방역당국에 ‘음성’이 표시된 사진을 보내는 것도 고역이다.장소를 옮길 때는 매번 정부의 방역 앱인 ‘리브 홈 세이프’로 QR코드를 입력해야 한다. 번거로운 건 물론 중국 당국에 동선을 추적당하고 있다는 공포감마저 든다.
그런데도 홍콩 국제공항은 푸드코트에서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붐빈다. 식당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완차이 거리 술집들은 새벽에도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려는 사람들로 붐벼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경매장과 미술관, 갤러리들도 외국인 관람객이 넘쳐나는 건 마찬가지다. 경매장에서 만난 프랜시스 벨린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사장은 홍콩이 여전히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재력가들의 구매력은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고, 홍콩은 그들을 모으기에 최적의 위치”라고 했다.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동남아시아 인도와 두루 가깝다는 ‘지정학적 경쟁력’이 탁월하다는 설명이다. 벨린 사장은 “2024년 홍콩지사를 시내 랜드마크인 핸더슨빌딩으로 확장 이전할 예정”이라고 했다. 임대 기간은 10년. 크리스티가 홍콩의 향후 가치를 여전히 높게 평가한다는 뜻이다.
부자들이 홍콩을 떠나긴 했지만, 상위 1% 슈퍼리치들의 이탈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윤현식 서울옥션 전략기획팀장은 “최상위 부자 중 홍콩 토박이들은 이곳에 자산 대부분이 묶여 있어 앞으로도 이곳을 떠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들 중 상당수가 현지 미술시장의 ‘큰손’이기 때문에 경기가 생각보다 많이 나빠지진 않았다”고 말했다.
외국인들 “생각보다 안정적”
홍콩의 약점으로 지목되던 미술관과 전시 인프라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재키 호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부사장은 “미술시장뿐 아니라 미술관의 소장 작품과 전시, 투어 등 관련 프로그램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다”며 “이곳의 소프트파워는 계속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개관한 뒤 ‘아시아의 뉴욕현대미술관(MoMA)’이란 별명을 얻은 홍콩 M+미술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출신으로 이곳 부관장을 맡고 있는 정도련 수석큐레이터는 영국 미술전문 매체 아트리뷰가 선정한 ‘올해 미술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세계적인 큐레이터다.지난 2일 찾은 M+에서는 구사마 야요이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일본을 제외하면 아시아에서 열린 작가의 최대 규모 전시다. 미술관 입구에는 개관 시각 30분 전인 오전 9시30분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이날 만난 한 외국인 컬렉터는 “코로나19 사태 후 처음으로 홍콩에 왔는데, 전해들은 것보다 분위기가 안정적이어서 놀랐다”며 “미술관 관람객이 이렇게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홍콩=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