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태우던 소각장, 루이비통 촬영지 되다…폐허의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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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업사이클링하다
공간을 업사이클링하다
지난해 7월. 10여 분짜리 짧은 동영상 한 편에 패션계가 술렁였다. 파장의 주인공은 루이비통의 가을·겨울(F/W) 남성 컬렉션 패션 필름이었다. 방탄소년단(BTS)을 모델로 ‘여행(The Voyage)’이라는 주제를 한 편의 영화처럼 표현했다는 점도 물론 화제의 이유였다. 하지만 하이엔드(최고급) 패션의 홍보 영상 문법을 뒤집었다는 평가가 나온 것은 K팝 스타의 출연 때문만이 아니었다.
촬영 장소가 독특하지 않았다면 눈길을 끄는 여러 감각적 비디오 가운데 하나로 그칠 수도 있어서다. 20m 높이의 거대한 철골 구조물과 네온 조명,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복도는 지구촌 대중문화의 아이콘과 만나며 시공을 넘어서는 신비감의 원천이 됐다.
‘힙하고 핫했던’ 세트장의 정체는 쓰레기 소각장. 1990년대 경기 부천시에 들어선 중동신도시는 4만여 가구의 아파트로 채워졌다. 계획인구 16만 명의 배후시설 가운데 하나가 1995년 가동을 시작한 소각장이었다. 날마다 200t의 쓰레기를 처리했던 소각장은 2010년 가동이 끝났다. BTS는 4년간의 정비를 거쳐 다시 태어난 복합문화공간 ‘부천아트벙커B39(사진)’에서 루이비통 영상을 찍었다.
부천아트벙커B39에 들어서면 일단 규모에 놀란다. 숫자 39는 소각장 내부 터널의 높이다. 39m 높이의 거대한 터널 앞에 서면 위압감이 느껴진다. 이곳 꼭대기까지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었다는 사실을 상상하면 공포가 스며들기도 한다. 소각장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청소에만 반년이 넘게 소요됐다. 쓰레기에서 나온 오수와 독성 물질이 건물 깊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쓰레기 소각장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다. 쓰레기를 옮기던 대형 크레인, 가스를 공급하는 파이프 그리고 기계를 제어하는 조정실 등이 과거의 이력을 증명하고 색다른 볼거리로 거듭났다. 설비 조정실의 수많은 조작 버튼으로 빼곡한 벽면은 마블 영화의 세트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영상 제작자들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루이비통 쇼의 창작진뿐만 아니었다. 조만간 개봉 예정인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tvN 드라마 <악마판사>도 이곳에서 찍었는데 원작자인 문유석 작가가 대본에서 이곳을 콕 집었다.
원래의 목표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시설이지만 해체와 파괴의 수순에 들어서지 않고 부활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업사이클링(upcycling)’이라 부른다. 업사이클링으로 소생의 기회를 잡은 곳들은 새로운 기능과 풍부한 스토리로 무장하고 다시 우리 곁에 머문다. 둘러보면 곳곳에서 업사이클링 시설들이 새로운 매력을 뽐낸다. 혹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걸 찾고 있는가.
김은아 한국경제매거진 기자 eak@hankyung.com
촬영 장소가 독특하지 않았다면 눈길을 끄는 여러 감각적 비디오 가운데 하나로 그칠 수도 있어서다. 20m 높이의 거대한 철골 구조물과 네온 조명,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복도는 지구촌 대중문화의 아이콘과 만나며 시공을 넘어서는 신비감의 원천이 됐다.
‘힙하고 핫했던’ 세트장의 정체는 쓰레기 소각장. 1990년대 경기 부천시에 들어선 중동신도시는 4만여 가구의 아파트로 채워졌다. 계획인구 16만 명의 배후시설 가운데 하나가 1995년 가동을 시작한 소각장이었다. 날마다 200t의 쓰레기를 처리했던 소각장은 2010년 가동이 끝났다. BTS는 4년간의 정비를 거쳐 다시 태어난 복합문화공간 ‘부천아트벙커B39(사진)’에서 루이비통 영상을 찍었다.
부천아트벙커B39에 들어서면 일단 규모에 놀란다. 숫자 39는 소각장 내부 터널의 높이다. 39m 높이의 거대한 터널 앞에 서면 위압감이 느껴진다. 이곳 꼭대기까지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었다는 사실을 상상하면 공포가 스며들기도 한다. 소각장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청소에만 반년이 넘게 소요됐다. 쓰레기에서 나온 오수와 독성 물질이 건물 깊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쓰레기 소각장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다. 쓰레기를 옮기던 대형 크레인, 가스를 공급하는 파이프 그리고 기계를 제어하는 조정실 등이 과거의 이력을 증명하고 색다른 볼거리로 거듭났다. 설비 조정실의 수많은 조작 버튼으로 빼곡한 벽면은 마블 영화의 세트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영상 제작자들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루이비통 쇼의 창작진뿐만 아니었다. 조만간 개봉 예정인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tvN 드라마 <악마판사>도 이곳에서 찍었는데 원작자인 문유석 작가가 대본에서 이곳을 콕 집었다.
원래의 목표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시설이지만 해체와 파괴의 수순에 들어서지 않고 부활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업사이클링(upcycling)’이라 부른다. 업사이클링으로 소생의 기회를 잡은 곳들은 새로운 기능과 풍부한 스토리로 무장하고 다시 우리 곁에 머문다. 둘러보면 곳곳에서 업사이클링 시설들이 새로운 매력을 뽐낸다. 혹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걸 찾고 있는가.
김은아 한국경제매거진 기자 e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