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업계에 합종연횡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바이오벤처 간 지분투자와 인수합병(M&A)이 이어지면서다. 자금난을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접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심혈관 질환 치료제 개발 비상장 바이오벤처 A사가 청산 준비에 들어갔다. 2년 전 받은 투자금이 소진돼 올 상반기부터 추가 자금 조달에 나섰지만 투자자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절반 이하로 낮춰 ‘구애’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법인은 청산하고, 연구 인력 20여 명은 다른 바이오벤처가 흡수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안과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B사는 내주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했다. 기관투자가 등에 발행주식의 20% 이내로만 신주를 발행하도록 한 정관 조항을 삭제하기 위해서다. B사 관계자는 “M&A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최근 빈혈 치료 복제약(바이오시밀러)을 개발한 상장사 팬젠의 경영권을 240억원에 인수했다. 2~3년 전부터 논의가 이뤄졌지만 인수 가격 이견으로 지지부진하다 최근 주가가 빠지자 급물살을 탔다.

바이오에프디엔씨는 비상장 바이오벤처 와이바이오로직스에 전략적 투자(SI)를 했다. 와이바이오로직스가 보유한 항체 플랫폼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벤처캐피털(VC)이나 대형 제약사가 아닌 바이오벤처가 다른 바이오벤처를 인수하거나 지분투자하는 건 이례적”이라고 했다.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는 건 바이오업계에 돈줄이 말라서다. 신약 개발에는 수년간 막대한 임상개발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 자금 조달이 막히는 게 바이오벤처에 치명적인 이유다. 최근 시중금리 상승과 전환사채(CB) 리픽싱 제도 변경, 깐깐해진 기업공개(IPO) 심사 등의 악재가 바이오벤처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만들었다.

일부 바이오벤처는 신주를 발행하면서 창업자 보유지분을 30~40% 싼값에 넘기겠다고 제안하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영권을 ‘끼워팔기’ 하겠다는 의도다. 현금 자산이 비교적 넉넉한 바이오벤처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사흘에 한 번꼴로 M&A 제안을 받는다”고 했다. 바이오벤처 핵심 자산인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도 매물로 쌓이고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자금 시장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회사를 청산하거나 M&A 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