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예산 과정에 납세자 목소리를 許하라
올해도 어김없이 내년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 2일)을 넘겼다. 대통령실 이전 예산, 신설 경찰국 예산,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 지역화폐 예산 등 수많은 예산 핵심 쟁점이 있다. 여기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같은 정치적 쟁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어쩌면 예산안이 연말까지 처리되지 못해 준예산을 적용하는 사태도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공산이 크다.

국회선진화법이 적용된 2014년 이후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정기국회 마지막 날(올해는 12월 9일)까지는 차년도 예산안이 처리됐다. 설사 이날까지 처리되지 않더라도 임시국회를 열어서라도 처리할 것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임시국회 개회를 요청한 상태다.

몇 달을 실랑이하던 예산안을 단 1주일 만에 처리되게 만드는 마법사는 바로 11월 30일 예산안조정소위원회 활동이 끝나고 난 후 구성되는 이른바 ‘소소위’다. 소소위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 두 사람과 기획재정부 예산 담당 제2차관 및 예산실장 가운데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로 구성되는 비공식 협의체다. 법적 근거도 없기에 기록도 남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여야 간 본격적인 흥정과 거래는 소소위의 밀실 담판에서 이뤄진다. 기재부 인사가 참석하는 이유는 국회가 예산을 삭감은 할 수 있지만 증액은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이 많은 쟁점을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을까. 과거 사례를 보면 정부 예산안 총액에서 3%든 5%든 뭉텅이로 깎고 그다음에 국회가 정부 예산안 총액을 넘지 않는 선까지 증액한다. 이를 예상해 정부안에는 깎여도 무방한 예산이 포함돼 있다. 지금까지 많이 활용된 방법은 국채 이자를 과다 계상하는 것이었는데 금리인상기라 올해는 어려울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증액된 예산은 국회 의석수에 비례해 여야 간에 나눈다. 각 당은 할당된 금액의 절반 정도는 당의 간판 사업에, 나머지 절반은 지역구 의원들의 사업에 배당한다. 실질적인 계수조정이 밀실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깜깜이 예산’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지역구 사업을 위해 한 푼이라도 더 가져가려는 의원들이 쪽지를 들이밀기 때문에 ‘쪽지 예산’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아무튼 소소위를 통해 여야 모두 역점 사업을 지켜낼 수 있게 된다. 거의 매년 예산안 처리가 법정시한을 넘기는 이유다. 올해 예산안 처리가 늦어진 것이 미해결 쟁점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은 거의 언제나 그래 왔다. 왜냐하면 그것이 여야 모두의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재정사회학자 루돌프 골트샤이트는 일찍이 ‘예산은 모든 이념을 벗겨낸 국가의 뼈대’라고 말한 바 있다. 소소위의 역할에서 보듯이 이렇게 중요한 예산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납세자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소소위만이 아니다. 전 예산 과정에서 납세자의 존재는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예산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정부 각 부처가 6월까지 차년도 예산요구서를 기재부에 제출하면 기재부는 이를 취합, 조정해 9월 정기국회 개회 전까지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이 단계에서도 그다음 국회 심의 과정에서도 조직되고 목소리가 크거나 연줄이 있는 특수이익집단을 제외한 일반 납세자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이들의 선호를 예산 과정에 반영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른바 ‘시민참여예산’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브라질의 일부 중소도시에서 실험한 바 있는 이 제도는 지자체의 직접 지원과 위탁사업에 의존하는 단체들의 잔치판으로 변질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중앙정부예산 과정에는 기술적으로 적용이 불가능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납세자들에게 직접 자신이 내는 세금의 1%는 어느 사업에 쓰기를 원하는지 묻는 것이다. 부처별로 사업을 대·중·소로 분류해 열거하고 단계별로 선호하는 사업을 선택하면 된다. 이 ‘납세자참여예산’과 국회가 통과시킨 예산안이 차이 난다면 정부와 국회는 이 차이를 줄이라는 압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