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대형 전기트럭 ‘세미’의 인도를 시작한 후 미개척지로 꼽히는 트럭용 배터리 시장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대형 전기트럭 1대에 전기 승용차 7~11대가량에 적용되는 배터리가 들어가는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친환경 상용차 보조금(대당 4만달러)을 받으면 기존 디젤트럭과 가격이 비슷해져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가 생산하는 세미에는 주 공급처인 LG에너지솔루션과 파나소닉의 원통형 배터리를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세 제원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 트럭에는 최대 900㎾h 배터리 팩이 적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기존 모델 Y 배터리 용량(최대 81㎾h)의 11배에 이른다. 배터리 업체로선 세미 한 대에 납품하는 것이 모델 Y를 11대분 공급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는 것이다.

IRA 덕에 친환경 상용차는 대당 4만달러(약 5200만원)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테슬라가 공개하지 않은 세미 가격은 18만달러 안팎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에 세제 혜택을 빼면 기존 대형 디젤트럭(약 12만~16만달러)과 비슷해진다. 전기트럭은 충전요금 등 유지비가 저렴하고 출력이 디젤트럭보다 세 배 높아 수요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연간 대형 트럭 판매량은 약 40만 대인데, 이들 차량이 모두 전기 트럭으로 바뀌면 배터리업계 입장에선 전기 승용차 400만 대의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미국 승용차 연간 판매량(1500만 대)의 26%에 달하는 규모다.

중국 업체 주제품인 LFP(리튬·인산·철)와 한국 업체 주제품인 ‘삼원계’ 배터리의 주도권 싸움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다임러트럭은 최대 800㎞ 달릴 수 있는 대형 전기트럭 e액트로스롱하울에 CATL 배터리를 적용할 계획이다. 이 트럭에도 기존 전기차의 7대 이상 분량인 600㎾h 배터리가 적용된다.

삼성SDI는 볼보트럭의 전기트럭에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용차에 특화된 ‘스케일러블’ 모듈·팩 기술로 상용차 모델별로 최적화된 성능을 제공해 급성장하는 친환경 상용차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SK온은 포드와 함께 터키에 꾸리기로 한 배터리 합작법인(약 45GWh)에서 유럽 전기 상용차 수요를 공략할 계획이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