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지정한 데이터전문기관인 금융보안원 직원들이 가명정보 결합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금융위원회가 지정한 데이터전문기관인 금융보안원 직원들이 가명정보 결합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전기차 충전시설을 어디에 설치해야 할까?’ 경기 성남시는 전기차 충전시설의 최적입지를 찾는 방법으로 ‘가명정보 결합’을 선택했다. 성남시 거주민의 차량 등록 정보와 티맵모빌리티의 차량 운행 이력 정보를 결합해 차량 방문이 많은데 충전소가 없는 곳, 거주민 등록 차량 중 전기차로 전환될 확률이 높은 차량의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했다. 그 결과, 성남시 내 총 60여 곳이 최적입지로 나타났다.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돈을 빌려서 이자와 원금을 잘 갚은 사람이 유리하다. 사회초년생이나 주부, 노약자 등 금융 거래 이력이 없거나 부족한 이른바 ‘신파일러(thin filer)’는 대출 조건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가명정보 결합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다. 금융거래 이력 대신 통신요금 납부내역 등을 활용해 정교한 신용평가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데이터 결합, 빅데이터 활용의 핵심

전기차 충전소 최적입지, '데이터 묶음'이 콕 찍어줬다
많은 경우 개별 데이터엔 수요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가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여러 데이터를 모아 활용하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가명정보를 만들어 결합했다. 예를 들어 통신사와 신용카드사의 고객 데이터를 결합한다면, 휴대폰 번호를 결합키로 변환한 뒤 결합키를 기준으로 두 회사의 고객 데이터를 결합하는 것이다.

가명정보 결합은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빅데이터의 활용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 2020년 8월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이 시행되면서 가명정보 결합이 본격화됐다.

다만 개인정보의 철저한 관리가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강정한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명정보 결합에서 엄청난 가치가 창출되는 만큼 정보 유출의 위험도 커진다”며 “한 번 불행한 사고가 터지면 데이터의 긍정적 활용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므로 지속가능한 데이터 활용을 위한 리스크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객을 알고 싶은 기업 니즈 충족

가명정보 결합은 자사 고객과 잠재 고객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신한카드는 SK텔레콤, 코리아크레딧뷰로(KCB) 등과 함께 지난해 10월 공동 데이터 브랜드 ‘그랜데이터’를 론칭해 기업들의 이종 데이터 결합을 지원하고 있다. 그랜데이터는 3개 회사 공통 고객 640만 명의 가명 결합 데이터를 분석한다. 어느 기업이 그랜데이터에 자사 데이터를 결합하면 자사 고객 특성에 맞는 더욱 정교한 분석이 가능해진다.

콘텐츠 분야 기업들의 가명정보 결합 사례도 등장했다. 게임개발사 넥슨코리아와 애니메이션 플랫폼 기업 라프텔은 게임 이용 데이터와 애니메이션 시청 기록 데이터를 결합해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도출했다.

정책 개발 및 평가에도 활용

가명정보 결합은 정부 정책 개발 및 효과 분석에도 쓰인다. 서울시는 1인 가구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통계청 및 SK텔레콤과 협력, 서울시민 총 340만 명의 가명 결합 데이터를 분석했다. 성별, 연령, 거주 지역에 따른 1인 가구의 다양한 특성을 도출해 취약 지역의 우선 해결 과제를 구체화했다.

행정안전부의 의뢰를 받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신한카드와 KCB의 가명 결합 데이터를 이용해 작년 9월 지급된 상생 국민지원금의 소비 진작 효과를 분석했다.

장경영 선임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