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해 러시아·중국·영국 등 세계 원전 선진국이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전 세계 70여 개 기업이 노형 개발에 들어가 초기 시장 선점에 나섰고, 각국 정부는 대대적인 지원책으로 기술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SMR 개발 예산이 국회에서 전액 삭감되기 일보직전이다.

미국은 에너지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던 2021년 1월에 ‘원자력 전략비전’을 발표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향후 7년간 SMR 개발 등에 32억달러를 투자키로 한 것이다. 현재 민관 합동으로 17개 노형을 개발하고 있다. 뉴스케일파워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을 획득해 아이다호주에 SMR 건설 계획을 확정했다. 테라파워도 와이오밍주 석탄발전소 부지에 SMR을 건설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에너지전략 2035’에 따라 국영 에너지기업 로사톰 주도로 SMR에 약 2조원을 투자키로 했다. 선박용 SMR을 포함해 총 17개 노형의 소형 원전을 개발하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최초로 해상부유식 SMR을 2020년 상용화했다. 또 미국보다 이른 2028년께 동시베리아 야쿠티아 지역에 육상 SMR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중국은 약 10조원을 SMR 개발에 투자해 20기의 SMR을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국유기업 중국핵공업집단공사를 중심으로 8개 노형을 개발 중이다. 영국도 롤스로이스 컨소시엄을 중심으로 2035년까지 SMR 10기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 SMR의 국내 상용화 계획도 못 짜는 등 SMR 경쟁에서 뒤처져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개발 중인 혁신형 SMR도 수출용으로 한정돼 있다. 국내에는 SMR을 설치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은 2012년 세계 최초 SMR로 평가받는 스마트원전 개발에 성공했지만, 기술 혁신을 이어가지 못하면서 경제성 획득에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추진한 탈원전 정책도 SMR 개발을 더디게 만들었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혁신형 SMR 사업 지원 예산으로 70억원을 편성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전액 삭감 방침을 밝혔다.

한국이 아직 ‘탈원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해외와 달리 정부의 지원이 대형 원전에 국한돼 있다”고 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