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진 원본(윗줄 왼쪽)과 렌사의 ‘매직 아바타’ 서비스를 통해 생성한 일러스트레이션.  프리스마랩스 제공
인물사진 원본(윗줄 왼쪽)과 렌사의 ‘매직 아바타’ 서비스를 통해 생성한 일러스트레이션. 프리스마랩스 제공
인공지능(AI)이 그린 그림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단순히 ‘AI 그림’을 예술로 봐야 하느냐는 차원을 넘어 이제는 AI가 화가들의 일자리를 없앨 것이란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AI가 세계 미술계의 ‘핫 이슈’가 된 건 클릭 한 번으로 텍스트나 사진을 그림으로 바꿔주는 서비스가 상용화된 여파다.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은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미술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AI가 무단으로 작품 훔쳐 써”

12일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CNN 등에 따르면 사진·비디오 편집 앱 렌사(Lensa)는 최근 신규 서비스 ‘매직 아바타’를 내놨다. 매직 아바타는 인물 사진을 여러 가지 스타일의 그림으로 바꿔주는 유료 서비스다. 일정 비용을 낸 뒤 사진 10~20장을 올리면 20분 뒤 수채화, 만화 등 다양한 스타일의 그림이 나온다.

매직 아바타 덕분에 렌사는 지난달 말 출시 이후 SNS를 휩쓸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매직 아바타가 만든 이미지를 올린 포스트가 수백만 건 올랐다. 매직 아바타 서비스 출시 직후 렌사는 미국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 수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매직 아바타의 핵심 경쟁력은 ‘스테이블 디퓨전’이란 이름의 AI 알고리즘이다. 미국 스타트업 스태빌리티AI가 개발한 이 알고리즘은 인터넷에서 수십억 개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스크랩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재창출한다. WP는 “매직 아바타는 사용자들이 머릿속에 갖고 있는 이미지를 시각화해주고, 예술가들이 그리거나 쓰고 싶은 것들을 개념화하는 것도 돕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저작권이다. 예술가들은 렌사의 AI 알고리즘이 이미지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정당한 대가 없이 자신들의 작품을 훔쳐 쓴다고 주장한다. 일러스트레이터 로린 입숨은 WP와의 인터뷰에서 “렌사가 내 색깔 조합, 붓터치, 질감, 그림 스타일 등을 동의 없이 베껴썼다”고 했다. 다른 예술가들도 렌사가 생성한 일부 이미지에 작가의 서명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며 “렌사가 저작권이 있는 이미지를 도용했다”고 항의했다.

논란이 커지자 렌사 운영사 프리스마랩스는 트위터를 통해 “AI는 여러 데이터에서 추출한 원리에 기반해 고유 이미지를 생성한다”며 “회계 소프트웨어가 회계사들을 없애지 않은 것처럼 AI도 예술가의 대체재가 아니라 훌륭한 보조 도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저작권 있는 이미지를 머신러닝에 사용했느냐’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다.

“한국도 저작권 분쟁 많아질 것”

AI 그림 서비스를 내놓은 건 렌사만이 아니다. ‘달리 2’ ‘미드저니’ 등 텍스트나 간단한 스케치만 입력하면 AI가 그림을 창작해주는 서비스는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러자 세계 1위 이미지 공유사이트 게티이미지뱅크는 저작권 문제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AI 프로그램에 그림을 공유하는 걸 전면 금지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에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을 입력하고 비슷한 이미지를 생성해 SNS에 올리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자 국내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자신의 SNS에 ‘제 그림을 AI에 학습시키지 마세요’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렌사와 같은 AI 그림 생성 앱이 속속 개발되고 있는 만큼 미국에서 불거진 문제가 국내에서 터지는 건 사실상 시간문제다.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AI 그림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만큼 한국에서도 이런 저작권 분쟁이 많이 불거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문학과 음악에는 ‘몇 퍼센트가 같으면 표절’이라는 기준이 있다”며 “이제 미술 분야에서도 ‘어디까지를 AI의 표절로 볼 것인지’ 명확한 기준을 세울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