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의 Fin토크] 법원 간 위믹스, 뼈 때린 판사
위믹스가 국내 4대 암호화폐거래소에서 동시 상장폐지된 지난 8일 오후 3시. 업비트에서의 마지막 매매가는 209원이었다. 1년 전 2만원대에서 고공행진하던 코인의 씁쓸한 퇴장이다. 물론 이 암호화폐의 생명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위믹스 개발사 위메이드의 게임 안에서 여전히 쓸 수 있고, 해외 거래소에는 상장이 유지돼 있다. 위메이드는 공식적으로 “위믹스의 글로벌 사업에는 차질이 없다”고 주장한다.

말이 그렇지 괜찮을 수가 없다. 국내 거래량이 사실상 전부인 ‘김치코인’이자, 코인값이 무너지면 게임을 할 이유도 사라지는 ‘P2E(Play to Earn) 코인’인 위믹스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위믹스 상폐를 “사회악 거래소의 슈퍼 갑질”로 규정하는 눈물의 기자회견(사진)을 했다. 상폐 취소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자 본안 소송,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등을 이어갈 태세다.

위믹스가 신청한 가처분의 기각은 예상할 수 있었다.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에서는 해마다 수십 개 코인이 퇴출당해 왔다. 상폐 취소 가처분을 낸 코인회사들이 있었지만 이긴 적이 없다.

"투자자와의 약속 어겼다"

[임현우의 Fin토크] 법원 간 위믹스, 뼈 때린 판사
이번 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송경근)의 결정문은 A4 용지 35장 분량이다. 약 1만자에 걸쳐 기술된 법원의 판단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면 거래소는 코인을 상폐해도 된다”로 요약할 수 있다. 재판부는 유통량 허위 공시로 신뢰를 잃은 위믹스를 퇴출할 수밖에 없다는 거래소 주장을 모두 인정했다. 거래소끼리 담합해 형평·비례의 원칙에 어긋난 제재를 가했다는 위메이드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위믹스 사태 피해자 협의체’를 꾸려 위메이드와 같은 편에 섰다. 소송전에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위믹스의 유통량 관리와 회계 처리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은 언론을 통해 1년 전부터 제기됐다. 그런데도 위메이드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지금도 “더 문제 있는 코인이 많은데 왜 우리한테만 가혹하냐”고 반문한다.

'신뢰' 강조한 1만字 결정문

재판부는 “가상자산은 가치 평가가 어렵고 수급에 크게 의존해 가격이 결정된다”며 “유통량은 투자자 판단에 매우 중요한 정보”라고 봤다. 위메이드는 위믹스 유통량 계획을 명백하게 위반했고, 투자자와의 약속을 어겼다고 못 박았다. 법원은 가상자산의 입법 공백을 인정하면서도 개발사가 지켜야 할 ‘신뢰’에 무게를 실었다. “이런 중대한 사안에도 거래소가 상폐를 결정할 수 없다면 나쁜 선례로 남아 시장을 더욱 투기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장은 투자자 손해가 불가피하지만, 가상자산 생태계를 해치는 행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게 장기적으론 이익이라고도 했다.

올해 가상자산 시장에는 우울한 뉴스만 이어졌다. 올 들어 해커에게 털린 암호화폐가 30억달러(약 4조원)를 넘어서 역대 최대라는 통계도 나왔다. 정부·은행의 통제를 받지 않는 디파이(DeFi·탈중앙화금융) 등을 해커들이 집중 공략한 영향이다. 블록체인이 전통 금융을 대체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술상의 허점은 개선하면 된다. 하지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 돌아선 대중의 마음을 되찾는 길이 험난할 듯하다. 루나의 권도형, FTX의 샘 뱅크먼 프리드 같은 ‘한때 업계 셀럽’이 보인 무책임한 민낯은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코인에 아예 관심 없다”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