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이 떠넘긴 '깡통전세 폭탄'…세입자 구제 법안, 국회는 손놨다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대치로 국회가 공회전하면서 전세 사기를 막기 위한 법안과 관련 예산 처리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빌라 왕 사태’와 같은 전세 사기 피해가 급증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국회에 따르면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은 전세 사기 방지 방안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지난 12일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국가와 시·도지사가 전세 피해지원 기구를 설치하고 각종 행정·재정적 지원에 나서도록 명시했다. 같은 당 김회재 의원도 전입신고 즉시 제3자에 대한 대항력을 갖추도록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최근 내놨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도 보증금 반환이 후순위로 밀리지 않게 전입신고 효력을 앞당기자는 취지다.

세입자에 대한 임대인의 전세 사기를 막기 위한 법 개정안은 이미 21대 국회 들어 10여 건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한 번도 법안을 다루지 않았다. 실질적인 논의 없이 유사 법안만 쌓여가고 있는 셈이다. 소병훈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5월 대표 발의한 이른바 ‘나쁜 임대인 공개법’(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 역시 국토교통위에 1년 넘게 계류돼 있다. 국회 관계자는 “법안 우선순위에서 밀린 부분도 있지만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절대적인 논의 시간 자체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전세 사기를 당한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예산도 여야 정쟁에 발이 묶였다. 국토부는 내년 예산안에 ‘전세 피해자 임차보증금 대출’ 사업으로 1660억원을 편성했다. 야당이 임대주택 예산 확대를 주장하면서 반대급부로 관련 예산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수도권에 1000가구가 넘는 빌라·오피스텔을 임대하며 ‘빌라 왕’이라고 불렸던 40대 임대업자가 지난 10월 갑자기 사망하고 세입자 피해가 속출하면서 깡통전세 문제의 심각성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시장 침체로 세입자들의 피해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정부와 국회가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