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마 야요이 '헬로 안양 위드 러브'
93세 현대미술의 살아있는 거장
어린시절 학대로 정신질환 앓아
환각서 본 점무늬로 불안감 달래
모두 구사마 야요이(93)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흔을 넘긴 고령의 예술가지만 미술계에서 그의 존재감은 여전히 확실하다. 최근 홍콩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구사마의 회화작품이 90억원에 팔렸다. 아시아 최대 시각예술 박물관인 ‘홍콩 M+ 뮤지엄’도 개관 1주년 기념 전시로 구사마의 대규모 회고전을 택할 만큼 인기가 뜨겁다.
국내에서 이런 ‘스타 작가’ 구사마의 작품을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범계역 근처의 평화공원이다. 활짝 핀 빨간색 꽃 옆에 다섯 마리의 강아지가 활기차게 뛰놀고 있는 조각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제목은 ‘헬로, 안양 위드 러브’(2007). 제2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의 일환으로 제작한 이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 구사마는 안양을 여러 차례 찾았다고 한다.
작품에서 눈에 띄는 건 꽃과 강아지를 뒤덮고 있는 동그란 물방울 모양 점무늬다. 하얀색, 노란색, 초록색…. 점무늬는 그의 정신병에서 시작했다. 1929년 전쟁통에 태어난 구사마는 어린 시절 군수공장에 강제 동원되면서 정신질환을 앓게 됐다. 부모님에게 학대까지 받으면서 결국 빨간색 점이 자신의 손과 온몸을 뒤덮는 것처럼 보이는 환각 증세를 보인다. 이후 점무늬는 구사마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혔다.
점무늬는 구사마의 불우한 어린 시절의 결과였지만, 그는 거기에 굴복하지 않았다. 환각에서 본 점무늬를 예술로 승화한 것. 점무늬로 새겨진 형형색색의 호박부터 점으로 가득 찬 방까지. 그는 끝없이 증식하는 듯한 점을 통해 한계가 없는 자유로운 세계를 표현했다.
구사마에겐 예술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었다. 강박증 환자인 그는 반복해서 점을 그리면서 내면의 불안함을 달래곤 했다. 정신질환이 재발해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는 정신병원 5분 거리의 작업실에서 작품을 만들었다. 마침내 세계가 그를 ‘거장’으로 인정하기까지 그는 예술을 놓지 않았다.
‘헬로, 안양 위드 러브’에도 희망이 담겨 있다. 점무늬로 뒤덮인 꽃과 강아지는 구사마가 꿈꾸는 희망의 세계다. 작품과 함께 그가 직접 쓴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우울했을 때 알록달록한 색깔의 강아지 다섯 마리를 데리고 꿈나라 같은 안양에 왔어요. (…) 안양 들판의 다섯 마리 강아지에게 위로받으며,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난 하늘 아래 누워 끝없이 잠들고 싶어요.” 구사마는 그만의 점무늬로 안양을 희망의 세계로 만든 것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