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오후에 받는 항암치료의 효과가 오전에 받는 항암치료보다 12배 이상 좋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세포 증식 및 분화와 관련된 뇌의 생체시계가 24시간 주기로 조절되는데, 항암제의 효능과 부작용 역시 생체시계로 인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오후에 받는 항암 치료, 사망률 12.5배 낮춘다
15일 김재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수리 및 계산과학연구단 연구책임자(CI·사진) 겸 KAIST 수리과학과 교수와 고영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시간항암요법’ 연구 결과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 임상학회 학술지 ‘JCI인사이트’에 13일 게재됐다.

연구팀은 서울대병원에서 혈액암의 일종인 광범위 B형 대세포 림프종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오전 8시 30분과 오후 2시 30분 중 시간을 선택해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치료를 받은 21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후속 관측 연구를 진행했다. 오전 치료 환자와 오후 치료 환자는 5대5 수준이다. 이들은 오전이나 오후 시간에 3주 간격으로 표적치료제와 항암화학요법을 결합한 암 치료를 4~6회 받았다.

관측 결과 남성 환자의 경우 시간에 따른 치료 효율 차이가 없었다. 반면 여성 환자의 경우 오후 치료를 받을 경우 60개월 이후 사망률이 오전 치료를 받은 환자와 비교해 12.5배 감소했다. 오전 치료 환자 중 25%의 환자가 사망한 것과 달리, 오후 치료 환자 중 사망에 이른 환자는 불과 2%에 불과했다.
오후에 받는 항암 치료, 사망률 12.5배 낮춘다
질병이 악화하지 않는 무진행 생존기간도 오후 치료 환자가 오전 치료 환자보다 2.8배 높았다. 오전 치료 환자 중 37%의 환자의 병이 악화한 반면, 오후 치료 환자 중 병이 악화한 환자는 13%에 불과했다. 백혈구 감소증과 같은 항암치료 부작용은 오전 치료 환자에게서 더 많이 나타났다.

남성 환자와 여성 환자의 차이는 백혈구 수의 증감과 관련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서울대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서 수집된 1만4000명의 혈액 샘플을 분석한 결과, 정상 여성은 백혈구 수가 오전에 감소하고 오후에 늘어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성의 골수 기능이 24시간을 주기로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하루 주기 리듬을 가진다는 의미다. 이에 반해 남성은 하루 중 백혈구 수 및 골수세포 확산 속도의 변화가 크지 않아 오전과 오후의 치료 효과가 유의미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고 교수는 “다른 변수를 완전히 통제한 대규모 후속 연구로 이번 연구의 결론을 재차 검증하고 다른 암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는 연구를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 연구가 시간항암요법의 국내 의료 현장 도입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김 CI는 “개인의 수면 패턴에 따라 생체시계의 시간은 크게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수면 패턴으로부터 생체시계의 시간을 추정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개인 맞춤형 시간항암요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혈액암의 시간항암요법 효과를 검증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앞서 해외에서는 대장암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 193명을 대상으로 약물 부작용을 시간대별로 확인한 바 있다.

김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