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2019년 초연한 뮤지컬 ‘물랑루즈!’ 공연 모습.  /CJ ENM 제공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2019년 초연한 뮤지컬 ‘물랑루즈!’ 공연 모습. /CJ ENM 제공
3년 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 ‘라이언 킹’ 등 수십 년째 사랑받는 쟁쟁한 뮤지컬 틈에서 오랜만에 새로운 명작이 탄생했다. 사전 제작비 2800만달러(약 360억원), 초연만으로 뮤지컬계 최고 권위의 토니상에서 최우수작품상 등 10관왕을 차지한 뮤지컬 ‘물랑루즈!’다. 1890년대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화려하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 ‘물랑루즈’가 원작인 이 뮤지컬이 오는 20일 한국 관객과 만난다. 아시아 초연인 동시에 독일에 이어 비영어권에선 두 번째 공연이다.

브로드웨이 최고의 화제작을 발 빠르게 한국에 들여온 사람이 있다. 20년째 ‘뮤지컬에 미친 남자’ 예주열 CJ ENM 공연사업부장이다. 그는 7년 전 영화 ‘물랑루즈’가 뮤지컬로 제작된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국내 무대에 올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기획 단계에 있던 호주 제작사 글로벌크리처스를 찾아가 그 회사가 제작하는 다른 작품들에 미리 투자하는 등 판권 확보를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영화 원작의 음악과 화려한 영상은 뮤지컬 영화의 정석과도 같았어요. 그런 작품을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벅찼습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어요.”

○배낭여행의 끝에서 만난 뮤지컬

7년 만에 데려온 물랑루즈!…"이젠 우리 작품으로 토니상 받아야죠"
그가 뮤지컬과 사랑에 빠진 순간은 2003년. 두 달간의 배낭여행 끝에 도착한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였다. 그곳은 별세계였다. 세계인을 홀린 뮤지컬들의 ‘오픈런’ 공연이 매일 밤 이어졌다. 극장에 들어서면 화려한 춤과 매혹적인 이야기, 심장을 멎게 하는 노래들이 펼쳐졌다. 뮤지컬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귀국 일정도 미뤘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뮤지컬 제작사를 무턱대고 찾아갔다. ‘명성황후’ ‘영웅’ 등을 제작해 국내 창작 뮤지컬의 신화로 불리는 에이콤이 그의 첫 직장. 2006년엔 CJ ENM으로 자리를 옮겨 ‘킹키부츠’ ‘브로드웨이 42번가’ ‘보디가드’ ‘비틀쥬스’ 등의 굵직한 라이선스 뮤지컬을 국내에 들여왔다.

미국에서 초연한 지 얼마 안 된 ‘물랑루즈!’를 한국에 들여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화려한 의상과 소품이 많아 다른 라이선스 초연작에 비해 제작비가 세 배 이상 들었다. 무대 세트와 의상, 소품 등은 모두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공연에서 이용한 제작소에서 똑같이 제작해 직접 들여왔다. 와인병 소품 하나를 3000만원을 주고 사올 정도로 디테일에 신경 썼다. 배우 오디션 기간만 7개월 이상. 그는 “연출 음악 안무 무대 음향 조명 등 모두 해외 제작진이 들어와 맡았다”며 “뮤지컬 넘버가 70개 팝송을 합쳐 편곡한 곡들이라 원곡의 분위기를 살리면서 가사를 번역하는 작업에만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했다.

“2막을 여는 ‘백스테이지 로맨스’ 장면은 연습하는 배우들도 어려워했던 장면이에요. 힘들게 연습하고 준비한 만큼 정말 멋진 장면이라 기대해도 좋습니다.”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 ‘오픈런 공연’ 목표”

뮤지컬 ‘물랑루즈!’ 2막 ‘백스테이지 로맨스’ 장면.
뮤지컬 ‘물랑루즈!’ 2막 ‘백스테이지 로맨스’ 장면.
음향부터 무대까지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인 뮤지컬은 계약부터 무대에 올리는 순간까지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투성이다. 그런 어려운 일을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한국의 영화 드라마 음악 등 K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다음 주자는 뮤지컬이 될 거라고 확신해요. 대학생 시절 처음 뮤지컬을 보고 감동 받았던 웨스트엔드에서 오픈런하는 창작 뮤지컬을 만드는 게 저의 오랜 꿈입니다. 우리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았듯, 우리 뮤지컬도 토니상 작품상을 받을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오래된 꿈에 매일 조금씩 가까이 가고 있다. CJ ENM은 마이클 잭슨의 일대기를 다룬 ‘MJ’, 할리우드 영화 원작의 ‘백투더퓨처’ 등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흥행한 작품에 지분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공동 프로듀싱에 참여해 왔다.

‘MJ’ 투자자 신분으로 토니상 시상식에 초청받아 참석하기도 했다. 예 부장은 “지분 투자로 당장 얻는 이익보다 작품에 참여한 연출가, 작곡가, 디자이너 등 제작진과 네트워크를 쌓는 게 더 큰 목적”이라며 “리드프로듀서가 돼 직접 작품을 제작할 때 수준 높은 제작진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말했다.

“CJ ENM이 가진 영화 지식재산권(IP)을 뮤지컬로 만들기 위해 기획 및 개발 중입니다. 브로드웨이 진출 전 미국 시카고에서 트라이아웃(테스트 공연)까지 올린 작품도 있어요.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로 ‘제2의 맘마미아’ ‘제2의 킹키부츠’를 제작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모든 뮤지컬이 강렬한 클라이맥스를 지나면 막을 내리듯, 뮤지컬에 대한 그의 열정도 식을 날이 있을까.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든 공연으로 토니상 작품상을 받는 날, 그때는 미련 없이 은퇴해도 될 것 같습니다.”(웃음)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