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가운데)이 16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국회의장실로 불러 “예산안에 조속히 합의해 달라”고 촉구했다. 김 의장이 두 손으로 바퀴를 굴리는 시늉을 하며 “경제를 살려내는 이 수레바퀴를 국회가 붙잡고 못 굴러가게 하고 있다”고 질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가운데)이 16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국회의장실로 불러 “예산안에 조속히 합의해 달라”고 촉구했다. 김 의장이 두 손으로 바퀴를 굴리는 시늉을 하며 “경제를 살려내는 이 수레바퀴를 국회가 붙잡고 못 굴러가게 하고 있다”고 질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도 예산안 협상이 16일 다시 ‘시계 제로’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전날 제안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수용한 중재안에 국민의힘이 난색을 보인 뒤, 여야는 이날 오전부터 서로를 향해 “양보하라”며 공방을 시작했다. 김 의장이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 “정치인이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어야 한다”며 호통에 가까운 말을 쏟아냈지만, 여야는 ‘네 탓’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일각에선 예산안 협상 타결이 사실상 대통령실 의중에 달려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평소 온화한 성품인 김 의장은 이날 양당 원내대표와 회동한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장은 작심한 듯 “복합 경제 위기 상황에 유일하게 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수단이 재정”이라며 “정치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건 마치 우리 경제를 살리고 취약계층을 도우려는 수레바퀴를 국회가 붙잡고 못 굴러가게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 의장의 ‘역정’은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대치에 대한 실망과 안타까움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란 평가다. 김 의장은 예산안 협상이 난항을 겪자 최대 쟁점인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과 관련해 두 차례나 중재안을 냈다. 15일에도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 내리는 최종 중재안을 내놨지만, 합의는 결국 불발됐다.

김 의장의 질타에도 양당 원내대표는 “양보할 만큼 했다(민주당)” “법인세 1% 인하로는 턱도 없다(국민의힘)”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

전날 의장 중재안을 수용한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여당은 지금까지도 용산 (대통령실) 눈치만 보며 시간 끌기에 급급하다. 국회가 대통령의 일방적인 요구를 그대로 따를 것이라면 삼권 분립이 왜 있고 민주주의는 왜 하는 것이냐”고 주장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좋은 게 좋다’고 합의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 뜻에 따라서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정부가 계획대로 재정을 운용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맞섰다.

정치권에선 국민의힘이 결단을 주저하는 배경에 법인세보다 ‘시행령 예산’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의장 중재안에는 민주당이 원천 삭감을 주장하는 행정안전부 경찰국 및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을 일단 내년 예산에는 포함시키지 않고 예비비로 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한 이 예산을 예비비에서 쓰게 한 점에 대해 전날 대통령실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협상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1%포인트 인하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신호를 주기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했지만, 지난 10일에는 1~2%포인트 인하안이라도 받아줄 것을 민주당에 제안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협상 타결은 이제 대통령실이 법인세 인하 폭을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지, 시행령 예산안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정할지에 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의장은 이날 “쟁점들을 검토해 보니 큰 차이가 있지도 않았다”며 “오늘이라도 합의안을 발표해 주시고, 세부사항 준비까지 마쳐 월요일(19일)에는 꼭 예산안을 합의해 처리하도록 특별한 결단을 내려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여당과 대통령실의 조율, 그리고 여야 간 협의 등을 통한 일괄타결에 실패하면 예산안 협상은 연말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이유정/맹진규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