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부터 해외 SF 명작 번역
고달픈 이민 생활 中 틈틈이 집필
"SF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장르"
최근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을 통해 방영된 드라마 ‘욘더’의 원작 <굿바이, 욘더>(김영사)를 쓴 김장환 작가(60·사진)는 서울 가회동에서 기자와 만나 “2011년 책이 나온 후 판권이 팔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며 “2020년에 다시 영상화가 추진될 때도 믿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2010년 제4회 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남편이 아내의 마음과 기억 전체가 옮겨져 있다는 가상공간 욘더에 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드라마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제작발표회 등을 통해 “11년 전 원작을 읽었는데 대한민국에 이런 소설이 있었나 놀랐다”며 “삶과 죽음을 주제로 과감한 설정을 한 것이 굉장히 신선했다”고 평가했다.
<굿바이, 욘더>는 김씨가 SF 작가로 쓴 첫 책이자, 유일한 책이다. 하지만 국내 SF 마니아들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SF 명작으로 꼽히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스노 크래쉬> 등을 1990년대에 국내 최초로 번역했다. 미국 오리건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1993년 새와물고기란 이름의 출판사를 세웠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문학은 민중문학이 주름잡고 있었고, 젊은이들에게 경직된 사고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강했어요. 뭔가 새로운 생각,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이 없을까란 생각에 찾아본 책들이 <스노 크래쉬> 같은 SF였죠.” 미국에서 1992년 출간된 <스노 크래쉬>는 요즘 유행하는 ‘메타버스’ 개념을 처음 들고나온 소설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SF 불모지였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광고까지 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결국 출판사를 접고 2008년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 갔다. 그곳에서 쓴 책이 <굿바이, 욘더>다.
그는 “출판사를 할 때도 창작의 꿈을 갖고 있었다”며 “그곳에서 요리학교에 다니며 시간 날 때 쓴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외국 어떤 곳에서 애완동물을 위한 사이버 묘지를 만든다는 기사를 보고 착안했어요. 사람한테도 가능하겠다 싶었죠. 그리스 신화 중에 지옥에 떨어진 아내를 찾아 나선 오르페우스 신화에서도 모티프를 따왔습니다.”
후속작은 없었다. “먼 나라에서 일상에 매진하다 보니 틈을 못 냈다”는 설명이다.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뉴질랜드에서 일하는 아내를 남겨놓은 채 그는 약 3년 전 혼자 한국에 돌아왔다. 작가란 꿈을 다시 키우기 위해서였다. 현재 단편집 출간을 준비 중이다. 그는 “SF와 판타지, 추리 등 여러 장르가 섞여 있는 단편집”이라고 했다.
한국 SF 발전에 토대가 된 주역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솔직히 내세울 만한 작품도 없는 아마추어라고 저 스스로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SF 작가’는 머릿속에 없어요. 그저 몇 권의 좋은 작품을 낸 작가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