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득의 쓸모」 이현우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아리스토텔레스를 빼고 설득을 이야기할 수 없다. 새로 개업하는 집에 가면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 구절이 담긴 액자를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설득’이라는 학문의 시작은 절대 미미하지 않았다(수사학의 현대식 이름이 바로 설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금부터 무려 2300년도 전에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했던 사람이지만 ‘수사학’이라는 책에 담긴 그의 가르침은 현대 과학에 비춰봐도 전혀 미미하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뭔가를 주장하는 것은 설득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다.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설득이 되기 위해서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proof)가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주장을 근거를 통해 증명할 때 비로소 설득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수사학의 목적은 그러한 근거를 가진 설득 수단을 찾는 데 있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이다. 설득을 업으로 하는 마케터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내용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의 목적이라고 말한 설득 수단의 3가지, 즉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가 바로 필자가 집필한 『설득의 쓸모』의 핵심 내용이다. 이 3가지 설득 수단이 현대 과학자들의 연구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세세히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집필 목적이다.

『수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간헐적으로 3가지 설득 방법의 상대적 우위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 설득 상황에서 어떤 순서로 사용해야 하는지는 전혀 언급한 바가 없다. 필자는 기존의 설득 연구를 바탕으로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의 순서로 사용될 때 설득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 순서대로 『설득의 쓸모』를 구성했다.

필자가 번역해서 국내에 소개한 『설득의 심리학(Influece)』의 저자 치알디니 교수는 최근 저서 『초전 설득(Presuasion)』에서 설득 전 단계의 전략적 준비가 설득의 성공 여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화자(話者)의 에토스 역시 설득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갖추어야 할 설득의 요소에 해당한다. 『손자병법』에서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가장 훌륭한 전략이라고 말한 것처럼 에토스는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설득에 성공하는 능력이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작업은 상대방이 화자를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메시지가 아무리 훌륭해도 말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으면 설득에 성공하지 못한다. 에토스는 굳게 닫힌 상대방의 마음을 활짝 열어서 설득하려는 사람의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준비 작업이 끝났으면 이제 본 게임으로 들어가야 한다. 2022년 월드컵을 위해 영입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벤투 감독은 ‘빌드업 축구’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빌드업은 상대방의 압박과 수비를 뚫고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골키퍼가 상대 진영을 향해 ‘뻥차기’를 하는 대신 골키퍼부터 시작해서 수비수, 중앙 미드필더, 공격수까지 점차적으로 상대방의 골문을 향해 올라가는 모든 전개를 뜻한다. 설득 역시 빌드업 과정이 필요하다. 로고스는 빌드업에 최적의 역할을 맡고 있다.

파토스는 설득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다. 다시 한 번 축구에 비유해서 설명해보자. 축구에서는 골을 넣는 것이 최종 목표다. 상대방의 장단점에 맞춰 적절하게 대응하는 빌드업 과정이 아무리 훌륭해도 골을 넣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 손흥민 선수처럼 뛰어난 골잡이가 없으면 경기에서 이기기 힘들다. 설득의 궁극적인 목표는 상대방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현대 과학에 의하면 상대방을 행동하게 만드는 힘은 감정이다. 하지만 모든 감정이 행동을 유발하는 ‘골잡이’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설득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어떠한 감정이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는가에 대해 많은 학문적 성과를 쌓아 놓고 있다.

오랫동안 설득은 일종의 예술 영역이었다. 현대 미술품처럼 이해하기도 힘들고, 따라 하기도 쉽지 않은 영역이었다. 그런데 과학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지난 60여 년 동안 설득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다양한 이론으로 설득이 발생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 모든 과정의 출발점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서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덕분에 우리는 설득을 과학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현대 과학은 설득의 쓸모를 엄청나게 확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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