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사진=뉴스1
2020년 10월 문재인 정부가 전혀 예상치 못한 ‘한국형 재정준칙’을 발표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유튜브에 등장해 재정준칙 개인 교습까지 해봤지만 여당과 야당이 모두 반대해 사실상 자동 폐기됐다.

재정준칙을 뜬금없이 발표한 그 자체부터 문제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매년 슈퍼 예산 편성과 수시 추경 편성으로 재정지출이 늘면서 국가채무 논쟁이 계속됐다. 그때마다 기재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가 다른 국가에 비해 낮은 점을 들어 재정이 건전하다고 반박해왔다.

韓 '재정준칙 법제화' 미룰 땐…국가부도 몰린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코로나가 한창이던 비상 국면에서 재정준칙을 발표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국 중앙은행(Fed), 유럽중앙은행(ECB),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코로나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재정 면에서 ‘폭주 열차’를 주문했다. 그 상황에서 재정준칙을 발표했다면 강도 높은 재정 건전화 의지를 담았어야 했다.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다면 ‘무늬만 준칙’ ‘맹탕 준칙’이란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재정과 통화 정책에 ‘준칙(rule)’을 도입하는 것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자유 재량적 여지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이 때문에 △준칙의 법적 근거를 가능한 최상위법에 두고 △관리 기준을 엄격히 규정해 적용하고 △위반 시 강력한 제재가 뒤따르도록 하는 3대 원칙이 강조된다.

밀턴 프리드먼 같은 전통적 통화론자들이 주장하는 통화준칙이 대표적이다.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로 설정한 2%를 웃돌면 ‘금리 인상’, 밑돌면 ‘금리 인하’를 자동으로 하도록 해 케인지언이 주장하는 중앙은행의 자유 재량적 여지를 배제했다.

홍남기팀의 재정준칙은 법적 근거부터 법률체계상 하위에 속하는 ‘시행령’에 뒀다. 당시 기재부는 시행령도 법률과 같은 효력이 있다고 반박했지만 재정준칙을 도입한 170개국 중 70% 넘는 국가가 지금도 ‘헌법’ 및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나머지 국가도 ‘정치적 협약’이나 ‘정당 간 합의’에 두고 있어 우리와 대조적이다.

두 번째 요건인 관리기준도 ‘그리고(and)’와 ‘또는(or)’ 중 어느 것이 더 엄격한 것인지 따져봤어야 했다. 홍남기팀 재정준칙은 국가채무비율이 60%, 통합 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하되 어느 한 기준이 초과하더라도 다른 기준이 밑돌면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었다. 오히려 두 기준 중 어느 하나라도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엄격성’에 부합된다.

세 번째 이행요건에서도 재정의 하방 경직성을 감안하면 선제적 관리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재정준칙을 당장 이행해야 하는 ‘시급성’이 따라야 하지만 홍남기팀 재정준칙은 2025년에 가서야 적용한다고 해 문재인 정부에서는 ‘많이 써도 괜찮다’는 해석이 가능했다. ‘예외’를 많이 두면 ‘준칙’이란 용어가 무색하게 된다.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할 경우 제재수단도 안 보였다.

금융위기 이후 기존의 ‘준칙’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뉴 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미래 예측까지 어려운 ‘뉴 애브노멀’ 시대를 맞고 있다. 뉴 노멀과 뉴 애브노멀 시대에서는 재정준칙보다 현대통화론자(MMT)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

‘빚내서 더 쓰자’로 상징되는 현대통화이론은 엄격히 따지면 현대재정이론이다. 홍남기팀 재정준칙이 발표됐을 당시 각국 중앙은행은 무제한 돈을 공급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같은 선상에서 재정정책도 코로나 사태가 끝날 때까지 ‘빚내서 더 쓰겠다’고 솔직하게 호소하는 것이 국민에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홍남기팀이 남겨 놓은 재정 부담을 안고 출발한 윤석열 정부의 추경호 경제팀이 재정준칙을 새로 만들었다. 세계 3대 평가사가 한국의 국가채무 위험성을 경고한 상황에서 더는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준칙이 가져야 할 3대 원칙도 지키려는 의지가 역력히 배어 있다. 그런 만큼 이번에는 반드시 여야 합의를 통해 재정준칙 법제화를 이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