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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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예산안 협상이 2014년도 국회 선진화법 개정 이후 가장 길게 이어지고 있다. 여당에서는 "법인세 인하 반대하는 야당의 고집"을, 야당에서는 "국회의장 중재안 무시하는 용산 대통령실의 아집"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한걸음만 더 나가면 이같은 대치국면은 보다 구조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시점부터 우려됐던 여소야대라는 국회 구조에 뿌리가 있다.

선진화법이 뭐길래

기자는 과거에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국회를 출입한 바 있다. 당시 기준으로 예산안은 당연히 새해를 며칠 앞둔 연말에 처리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일단 예산안이 시행되는 이듬해 전까지만 처리되면 국정 운영에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여야는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이나 정기국회 종료일(12월 9일)보다 연말을 데드라인으로 인식했다.

특히 대선이 치러지는 해는 특히나 예산안이 늦게 처리됐다. 2008년도 예산안은 2007년 12월 28일, 2013년도 예산안은 해를 넘긴 2013년 1월 1일에 국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2014년 국회 선진화법이 제정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선진화법 제정으로 많은 국회 풍경이 바뀌었지만 예산안 처리와 관련한 중요한 변화는 국회의장에 예산 부의권이 생긴 것이다.

다시 말해 여야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예산안과 부수 세법을 본회의로 올려 표결 처리할 권한을 줬다. 여야가 협의안을 내지 못하면 정부가 낸 예산안과 조세 개편안이 그대로 처리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안을 조금이라도 고쳐 지역구 예산을 반영해야 하는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강제 처리 시점이 앞당겨진 것이다. 덕분에 2014년 이후 지난해까지 예산안은 정기국회 회기 내에 처리될 수 있었다.

왜 이번에는 작동하지 않나

하지만 이같은 국회의장의 권한은 여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을 때 발휘된다. 제대로 협상을 하지 않으면 정부안이 그대로 통과될 것이라는 우려는 야당에 안겨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21대 국회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69석으로 여당인 국민의힘(115석)을 크게 압도하고 있다. 국회의장이 정부안을 그대로 본회의에 올리더라도 민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부결되는 구조다.

실제로 지난해까지는 여당이 다수당이었다. 2014년과 2015년은 새누리당이, 2017년부터 2022년까지는 민주당이 국회내 다수당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이 유일한 예외지만 당시는 국정농단 사태로 정부도, 국회도 예산안에 신경 쓰지 못했다.

이런 사정이다보니 야당인 민주당 입장에서 정부안 통과를 두려워하며 예산안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어졌다.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예산안의 빠른 처리보다는 여야간 협상을 통해 하나라도 더 얻어내야할 처지가 됐다.

특히 국토교통위, 정무위, 행정안전위 등에서는 여당 의원들이 출석 거부한 가운데 민주당이 단독으로 예산안을 처리했다. 여기서 삭감된 행안부 경찰국,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에 대통령실이 과도할 정도로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대체, 예산안은 언제 처리되는거냐

이런 배경을 놓고 보면 상대적으로 여당에 유리해 보였던 김진표 국회의장의 지난 15일 중재안을 대통령실이 뒤엎은 것이 이해된다. 물론 전통과 유산을 중요시하는 보수가 8년간 이어져온 관례를 뒤엎을만큼 많은 것을 앞으로의 협상에서 얻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사정으로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예산안 처리 데드라인은 유명무실해졌다. 이제 남는 것은 선진화법 이전의 연말 시한 뿐이다.

정치권에서는 오는 28~29일 예산안 처리 이야기가 나온다. 기자가 전망하기에도 여야는 이번주 내내 대치국면만 이어가다 주말쯤 서로 타협안을 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같은 국회의 연말 풍경은 2024년 총선에서 여야 구도가 바뀌지 않는 한 윤석열 정부 내내 지속될 전망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