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시달리는 용산 주민들 단체행동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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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 인근 아파트 주민 1000여명이 집회로 인한 피해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경찰 등에 제출했다. 집회에 따른 소음을 막고 집회 참가자들의 주거지역 침범을 막아달라는 것이 주 내용이다.
19일 서울 용산경찰서 등에 따르면 서울 한강로1가의 대우월드마크용산, 용산파크자이아파트, 용산자이오피스텔 등 용산 대통령실 인근 주민들은 지난 15일부터 연달아 이 같은 내용의 탄원서 제출하고 있다. 탄원서는 대통령 민원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 22명, 용산구청, 민주당 지역위원회에도 전달됐다.
탄원서에 담긴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아파트 주변에서 고출력 확성기 사용 전면 금지 △야간 집회 및 시위 전면 금지 △집회 및 시위 참가자들의 인원 제한 △집회 및 시위 참가자들의 아파트 내부 출입 금지 △아파트 앞 도로 점거 금지 등이다. 이날까지 탄원서에 서명한 인원은 총 933명이다. 다른 아파트 주민들도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탄원서를 주도한 대우월드마크용산 입주자 대표회는 지난 7월에도 356명의 주민 서명을 받아 용산서 등에 단지 내 피해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입주자 대표회 관계자는 “당시 경찰 쪽에선 집회 제지가 어렵다는 원론적 답변만 했다”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주길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국회서도 집시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은 외면받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용산 대통령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 주변 100m 이내에서의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정작 일반 주민들의 피해를 막는 내용은 없다. 탄원서를 접수한 권 의원 측은 "경찰 측에도 이 같은 내용을 충분히 전달했다"며 "용산서는 물론 경찰청 본청과도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답했다. "평화로웠던 우리 동네 돌려달라" 지난 17일 오후 찾은 서울 한강로1가 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 체감온도가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에도 동네는 집회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집회 장소 방면인 10번 출구로 향하자 “윤석열 퇴진”이 쓰인 팻말을 든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들으란 듯 “윤석열이가 다 (나라를) 망치는데 우리가 뭐라도 해야지”라며 중얼거리는 시민들도 있었다. 온몸에 태극기를 두르고 해병대 모자를 쓴 사람들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 옮긴 뒤 용산은 ‘집회 꾼들의 메카’가 됐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1~4월 평균 40.7건이었던 용산경찰서 관할 집회 신고 건수는 5월 81건, 6월 97건으로 두배 넘게 폭증했다.
집회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다. 가장 큰 피해는 소음이다. 이날 집회 현장에서 측정한 소음은 평균 69데시벨, 최대 80데시벨이었다. 국가소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80데시벨 크기의 소음은 철로변 및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수준으로 청역 장애가 시작될 수 있다. 이날 만난 한 주민은 “오늘은 그나마 얌전한 편”이라며 “심할 때는 집안의 소파나 창문이 흔들릴 정도”라고 말했다. 소음 내용도 문제다. “이재명 구속” “윤석열 죽어라” 등 특정인에 대한 비난부터 “XX하고 자빠졌네” 등 원색적인 욕설도 들려왔다. 주민들과의 마찰도 잦다. 주민 고모 씨(38)는 “소음 좀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아줌마는 집에 가서 설거지나 해라’고 조롱하더라”고 말했다. 고 씨는 “주말 아침 일찍부터 애들을 데리고 다른 동네의 친척 집으로 피신 가는 주민들도 있다”고 전했다.
애꿎은 아이들까지 피해를 본다. 집회 참가자들이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너희 커서 애국해라”고 성조기를 억지로 쥐여주는 경우도 다반사다. 집회 현장 인근에 거주하는 채모 씨(42)는 “집회하는 사람들이 하굣길 아이들을 불러 자신이 중계하는 유튜브에 강제로 출연시키기도 한다”며 “아이들이 집회 구호를 따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 현장에선 부모들이 아이들의 귀를 막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민들은 “평온했던 동네를 뺏겼다”고 토로했다. 대우월드마크 아파트 단지 앞 도로에는 “민주노총 꺼져” “촛불 난동 세력 꺼져” 등 험악한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바로 옆에는 다른 단체에서 플래카드를 해칠까 24시간 감시하는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한 주민은 술에 취해 아파트 단지 상가로 들어와 시비를 거는 집회 꾼들도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이 지역에서 15년째 거주 중인 김모 씨는 “대체로 평온하고 밤길도 안전한 동네였는데 이젠 누가 말 걸면 ‘집회 꾼인가?’싶어 겁난다”며 “과거의 평화로웠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부동산도 "토요일엔 영업 포기" 인근 부동산들도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집을 보러 왔다가 집회 광경을 보고선 발을 돌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용산 지역의 주택 수요자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용산구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모 씨(52)는 “이쪽 동네는 전통적으로 직장 은퇴 후 조용한 곳에서 정착하고자 하는 중산층들이 찾는 곳”이라며 “집회 광경을 보면 그런 분들이 여기로 이사를 오고 싶겠나”고 되물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
19일 서울 용산경찰서 등에 따르면 서울 한강로1가의 대우월드마크용산, 용산파크자이아파트, 용산자이오피스텔 등 용산 대통령실 인근 주민들은 지난 15일부터 연달아 이 같은 내용의 탄원서 제출하고 있다. 탄원서는 대통령 민원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 22명, 용산구청, 민주당 지역위원회에도 전달됐다.
탄원서에 담긴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아파트 주변에서 고출력 확성기 사용 전면 금지 △야간 집회 및 시위 전면 금지 △집회 및 시위 참가자들의 인원 제한 △집회 및 시위 참가자들의 아파트 내부 출입 금지 △아파트 앞 도로 점거 금지 등이다. 이날까지 탄원서에 서명한 인원은 총 933명이다. 다른 아파트 주민들도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탄원서를 주도한 대우월드마크용산 입주자 대표회는 지난 7월에도 356명의 주민 서명을 받아 용산서 등에 단지 내 피해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입주자 대표회 관계자는 “당시 경찰 쪽에선 집회 제지가 어렵다는 원론적 답변만 했다”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주길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국회서도 집시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은 외면받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용산 대통령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 주변 100m 이내에서의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정작 일반 주민들의 피해를 막는 내용은 없다. 탄원서를 접수한 권 의원 측은 "경찰 측에도 이 같은 내용을 충분히 전달했다"며 "용산서는 물론 경찰청 본청과도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답했다. "평화로웠던 우리 동네 돌려달라" 지난 17일 오후 찾은 서울 한강로1가 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 체감온도가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에도 동네는 집회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집회 장소 방면인 10번 출구로 향하자 “윤석열 퇴진”이 쓰인 팻말을 든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들으란 듯 “윤석열이가 다 (나라를) 망치는데 우리가 뭐라도 해야지”라며 중얼거리는 시민들도 있었다. 온몸에 태극기를 두르고 해병대 모자를 쓴 사람들도 있었다.
"집 가는 아이들 불러다 유튜브 출연시키기도"
이날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선 진보·보수 단체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진보 단체인 촛불승리전환행동은 이곳에서 오후 3시께 ‘김건희 특검, 윤석열 퇴진 촛불대행진’ 사전집회를 열고 서울역 방면으로 행진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8차선 중 4차선을 차지하고 500미터가량 늘어섰다. 스피커에선 “XX하고 자빠졌네” 등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촛불행동과 100여m 떨어진 맞은 편에선 보수단체인 신자유연대 소속 회원 1200여명이 맞불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촛불행동이 집회를 할 수 없도록 우리가 24시간 집회 신고를 해놨다”며 “대통령을 지키자”고 외쳤다. 이따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욕설도 나왔다.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 옮긴 뒤 용산은 ‘집회 꾼들의 메카’가 됐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1~4월 평균 40.7건이었던 용산경찰서 관할 집회 신고 건수는 5월 81건, 6월 97건으로 두배 넘게 폭증했다.
집회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다. 가장 큰 피해는 소음이다. 이날 집회 현장에서 측정한 소음은 평균 69데시벨, 최대 80데시벨이었다. 국가소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80데시벨 크기의 소음은 철로변 및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수준으로 청역 장애가 시작될 수 있다. 이날 만난 한 주민은 “오늘은 그나마 얌전한 편”이라며 “심할 때는 집안의 소파나 창문이 흔들릴 정도”라고 말했다. 소음 내용도 문제다. “이재명 구속” “윤석열 죽어라” 등 특정인에 대한 비난부터 “XX하고 자빠졌네” 등 원색적인 욕설도 들려왔다. 주민들과의 마찰도 잦다. 주민 고모 씨(38)는 “소음 좀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아줌마는 집에 가서 설거지나 해라’고 조롱하더라”고 말했다. 고 씨는 “주말 아침 일찍부터 애들을 데리고 다른 동네의 친척 집으로 피신 가는 주민들도 있다”고 전했다.
애꿎은 아이들까지 피해를 본다. 집회 참가자들이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너희 커서 애국해라”고 성조기를 억지로 쥐여주는 경우도 다반사다. 집회 현장 인근에 거주하는 채모 씨(42)는 “집회하는 사람들이 하굣길 아이들을 불러 자신이 중계하는 유튜브에 강제로 출연시키기도 한다”며 “아이들이 집회 구호를 따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 현장에선 부모들이 아이들의 귀를 막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민들은 “평온했던 동네를 뺏겼다”고 토로했다. 대우월드마크 아파트 단지 앞 도로에는 “민주노총 꺼져” “촛불 난동 세력 꺼져” 등 험악한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바로 옆에는 다른 단체에서 플래카드를 해칠까 24시간 감시하는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한 주민은 술에 취해 아파트 단지 상가로 들어와 시비를 거는 집회 꾼들도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이 지역에서 15년째 거주 중인 김모 씨는 “대체로 평온하고 밤길도 안전한 동네였는데 이젠 누가 말 걸면 ‘집회 꾼인가?’싶어 겁난다”며 “과거의 평화로웠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부동산도 "토요일엔 영업 포기" 인근 부동산들도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집을 보러 왔다가 집회 광경을 보고선 발을 돌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집보러 왔다가도 집회 보고선 발길 돌려
삼각지역 인근의 아파트 단지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한모 씨(44)는 “주말에 집 보러 오는 사람들은 ‘시위 때문에 시끄러워 보이는데 살기에 괜찮냐’고 물어보면서 얘기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한 씨는 “손님에게 ‘살기 좋은 동네’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집회가 몰리는 주말에는 아예 영업을 포기하고 부동산 문을 닫는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은 가운데 용산은 집회로 ‘이중고’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19일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용산 대통령실 입주 후인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용산구 주택거래 건수는 총 1287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2403건) 대비 46.5%가량 감소한 수치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의 주택거래 건수는 9만587건에서 4만8869건으로 약 46% 줄었다. 대통령실 이전 초기만 하더라도 지역 부동산 거래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지만, 실제론 악영향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용산 지역의 주택 수요자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용산구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모 씨(52)는 “이쪽 동네는 전통적으로 직장 은퇴 후 조용한 곳에서 정착하고자 하는 중산층들이 찾는 곳”이라며 “집회 광경을 보면 그런 분들이 여기로 이사를 오고 싶겠나”고 되물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