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살아있다면 숨 쉬듯 공부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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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아버지가 “뭐? 대충해? 군 생활은 네 인생이 아니고 남의 인생이냐?”라고 역정을 냈다. 아버지는 “세상에 태어나고부터 위기다. 삶이란 위기의 연속이다”라고 전제한 후 “군대 생활이 네 인생에 손해고 위기란 발상이 대체 어떻게 나온 거냐”라고 따져 물었다. “군대가 생긴 이후 수백만 선배들은 모두 잘못 산 삶이냐? 너처럼 군대서 대충 살던 놈은 사회에 나와서도 똑같이 대충 산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위기는 곧 기회다. 책을 펴서 기회를 찾아라. 배우는 데 때와 장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살아있다면 숨 쉬듯 공부해라. 인간은 아는 만큼만 행동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날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책을 읽는데 어찌 장소를 가릴쏘냐.” 바로 귀대하라고 해 하는 수없이 어머니와 함께 방을 나왔다. 등 너머에서 “저런 정신 나간 놈”이란 아버지의 풀리지 않는 분노가 들렸다. 어머니는 소리 내 크게 우시며 대문을 공연히 여닫았다. 군화를 싸든 어머니 손에 이끌려 동생 방에서 눈을 붙였다. 곤하게 잠에 빠졌을 때 어머니가 머리를 만지며 “아버지 일어나실 시간”이라며 군화를 내밀었다. 발소리를 죽여 대문을 빠져나올 때 아버지 방은 불이 켜져 있었다. 책 서른 권을 사서 그날 바로 귀대했다.
며칠 전 어머니는 생전의 아버지를 이렇게 회고했다. “너도 봐서 알겠지만, 평생을 독하게 공부하셨다. 준비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 앞에 나서지 않으셨다. 밤을 새운 건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어머니는 이어서 “전쟁터에서 다리를 다친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장애인 재활교육을 받을 때 그렇게 공부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하시더라. 그때 살아가면서 필요한 의식주 관련되는 기술을 모두 배우셨다고 했다”고 전해주셨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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