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살아있다면 숨 쉬듯 공부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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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들를 데가 많아 첫 휴가를 나와 집에 도착했을 때는 통금이 임박해서였다. 어머니는 맨발로 뛰쳐나와 반겼다. 부모님께 큰절하고 난 뒤 할 말이 많아 말이 엉겼다. 훈련소에서 크림빵 사서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먹던 얘기를 하다 느닷없이 GOP를 아세요? 하며 질문도 했다. 군 생활하며 처음 보고 느낀 놀란 일부터 말했다. 군대 얘기는 부풀려도 먹힌다. 두 분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해 들으셨다. “모택동이 죽어서 군이 비상 중이라 간신히 특별휴가 받아 나왔다”라며 생활에 잘 적응한다고 말씀드렸다. 신나게 말하는 중에 걱정하실 것 같아 “군대 있을 때는 대충하고 제대하면 정말 잘할게요”라는 말을 했다. 아버지는 듣다 말고 재떨이를 내게 던졌다. 너무 갑작스러워 머리를 맞긴 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뭐? 대충해? 군 생활은 네 인생이 아니고 남의 인생이냐?”라고 역정을 냈다. 아버지는 “세상에 태어나고부터 위기다. 삶이란 위기의 연속이다”라고 전제한 후 “군대 생활이 네 인생에 손해고 위기란 발상이 대체 어떻게 나온 거냐”라고 따져 물었다. “군대가 생긴 이후 수백만 선배들은 모두 잘못 산 삶이냐? 너처럼 군대서 대충 살던 놈은 사회에 나와서도 똑같이 대충 산다”라고 했다.
화가 잔뜩 난 아버지는 내가 꺼낸 모택동(毛澤東) 중국 공산당 주석을 예로 들어 길게 설명했다. 그날 들은 고사성어가 ‘삼복사온(三復四溫)’이다. ‘세 번 반복해 읽고 네 번 익히라’라는 뜻이다. 모택동 자신이 만든 독서법이다. ‘붓을 움직이지 않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라는 원칙을 그는 굳게 지켰다. 책에서 얻은 지식을 실생활에 확실히 연계시킨 그는 한 번 읽은 책의 겉표지에 동그라미 같은 기호를 그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독서광이었다. 그가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책이 있었다. 1만 2,000㎞를 도보로 행군한 대장정 중에도 책을 놓지 않았다.
아버지는 “위기는 곧 기회다. 책을 펴서 기회를 찾아라. 배우는 데 때와 장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살아있다면 숨 쉬듯 공부해라. 인간은 아는 만큼만 행동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날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책을 읽는데 어찌 장소를 가릴쏘냐.” 바로 귀대하라고 해 하는 수없이 어머니와 함께 방을 나왔다. 등 너머에서 “저런 정신 나간 놈”이란 아버지의 풀리지 않는 분노가 들렸다. 어머니는 소리 내 크게 우시며 대문을 공연히 여닫았다. 군화를 싸든 어머니 손에 이끌려 동생 방에서 눈을 붙였다. 곤하게 잠에 빠졌을 때 어머니가 머리를 만지며 “아버지 일어나실 시간”이라며 군화를 내밀었다. 발소리를 죽여 대문을 빠져나올 때 아버지 방은 불이 켜져 있었다. 책 서른 권을 사서 그날 바로 귀대했다.
며칠 전 어머니는 생전의 아버지를 이렇게 회고했다. “너도 봐서 알겠지만, 평생을 독하게 공부하셨다. 준비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 앞에 나서지 않으셨다. 밤을 새운 건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어머니는 이어서 “전쟁터에서 다리를 다친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장애인 재활교육을 받을 때 그렇게 공부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하시더라. 그때 살아가면서 필요한 의식주 관련되는 기술을 모두 배우셨다고 했다”고 전해주셨다.
지금도 아버지의 역정이 귓전을 때린다. 그날 복귀한 이후 치열하게 군 생활을 했다. 닥치는 대로 읽고 또 읽고 삼복사온을 지켜 습관이 됐다. 독서가 삶의 지혜를 크게 줬다. 아버지 유산 중 최고다. 글을 깨우친 손주들에게 가장 먼저 물려줘야 할 습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아버지가 “뭐? 대충해? 군 생활은 네 인생이 아니고 남의 인생이냐?”라고 역정을 냈다. 아버지는 “세상에 태어나고부터 위기다. 삶이란 위기의 연속이다”라고 전제한 후 “군대 생활이 네 인생에 손해고 위기란 발상이 대체 어떻게 나온 거냐”라고 따져 물었다. “군대가 생긴 이후 수백만 선배들은 모두 잘못 산 삶이냐? 너처럼 군대서 대충 살던 놈은 사회에 나와서도 똑같이 대충 산다”라고 했다.
화가 잔뜩 난 아버지는 내가 꺼낸 모택동(毛澤東) 중국 공산당 주석을 예로 들어 길게 설명했다. 그날 들은 고사성어가 ‘삼복사온(三復四溫)’이다. ‘세 번 반복해 읽고 네 번 익히라’라는 뜻이다. 모택동 자신이 만든 독서법이다. ‘붓을 움직이지 않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라는 원칙을 그는 굳게 지켰다. 책에서 얻은 지식을 실생활에 확실히 연계시킨 그는 한 번 읽은 책의 겉표지에 동그라미 같은 기호를 그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독서광이었다. 그가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책이 있었다. 1만 2,000㎞를 도보로 행군한 대장정 중에도 책을 놓지 않았다.
아버지는 “위기는 곧 기회다. 책을 펴서 기회를 찾아라. 배우는 데 때와 장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살아있다면 숨 쉬듯 공부해라. 인간은 아는 만큼만 행동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날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책을 읽는데 어찌 장소를 가릴쏘냐.” 바로 귀대하라고 해 하는 수없이 어머니와 함께 방을 나왔다. 등 너머에서 “저런 정신 나간 놈”이란 아버지의 풀리지 않는 분노가 들렸다. 어머니는 소리 내 크게 우시며 대문을 공연히 여닫았다. 군화를 싸든 어머니 손에 이끌려 동생 방에서 눈을 붙였다. 곤하게 잠에 빠졌을 때 어머니가 머리를 만지며 “아버지 일어나실 시간”이라며 군화를 내밀었다. 발소리를 죽여 대문을 빠져나올 때 아버지 방은 불이 켜져 있었다. 책 서른 권을 사서 그날 바로 귀대했다.
며칠 전 어머니는 생전의 아버지를 이렇게 회고했다. “너도 봐서 알겠지만, 평생을 독하게 공부하셨다. 준비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 앞에 나서지 않으셨다. 밤을 새운 건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어머니는 이어서 “전쟁터에서 다리를 다친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장애인 재활교육을 받을 때 그렇게 공부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하시더라. 그때 살아가면서 필요한 의식주 관련되는 기술을 모두 배우셨다고 했다”고 전해주셨다.
지금도 아버지의 역정이 귓전을 때린다. 그날 복귀한 이후 치열하게 군 생활을 했다. 닥치는 대로 읽고 또 읽고 삼복사온을 지켜 습관이 됐다. 독서가 삶의 지혜를 크게 줬다. 아버지 유산 중 최고다. 글을 깨우친 손주들에게 가장 먼저 물려줘야 할 습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