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한·미 관계를 갈등으로 몰아넣은 ‘코리아 게이트’의 주역 박동선 씨가 19일 별세했다. 향년 89세.1935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박씨는 배재학당을 거쳐 1961년 미국 워싱턴DC 조지타운대를 졸업했다. 미국 정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은 박씨는 1970년대 주한미국 감축 및 인권 탄압으로 박정희 정부와 미국 간 관계가 악화하자 한국에 유리한 여론이 형성되도록 미국 의원에게 돈을 뿌렸다는 혐의로 의회 청문회에 불려갔다.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가 터지면서 한·미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미국 전현직 의원에게 약 85만달러를 선거 자금으로 제공했다고 자백해 처벌은 면했다. 2007년 사담 후세인 정부를 위해 유엔에 로비한 혐의로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감형 조치를 받아 2008년 9월 석방됐다. 석방 후 귀국해 세간의 노출을 피한 채 생활해왔다.정지은 기자
1970년대 중반 한미관계에 먹구름을 드리운 '코리아게이트' 사건의 박동선 씨가 향년 89세의 나이로 19일 별세했다.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박씨는 이날 오후 6시 45분께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유족은 박 씨가 지병을 앓던 중 일주일 전쯤 상태가 악화돼 순천향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상태였다고 전했다.코리아게이트는 1976년 10월 24일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지가 '박동선이라는 한국인이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연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상당의 현금을 90여 명의 미국 국회의원과 공직자에게 전달하는 매수공작을 벌였다'고 1면에 대서특필하면서 시작됐다.이에 따라 미국에서 반한 여론이 들끓으면서 특별검사팀까지 구성돼 조사가 이뤄졌다.박 씨는 1978년 미 사법당국의 수사를 거쳐 미 의회 공개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했으며 박 씨로부터 돈을 받은 현직 의원 1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7명이 의회 차원에서 징계를 받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