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사진=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내년에는 올해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할 겁니다. 어려울 때 스타트업을 돕는 것이 벤처캐피털(VC)의 역할이죠. 반도체, 인공지능(AI), 무인 자동화 등 기술 기업을 발굴할 계획입니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지난 21일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2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한국의 미래를 이끌 유망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LB인베스트먼트는 그동안 엔터테인먼트업체 하이브, 게임사 펄어비스와 카카오게임즈, 프롭테크 업체 직방, 온라인 상거래 기업 컬리 등 한국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사)에 투자하며 국내 벤처케피털(VC)업계의 성장을 이끈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다. 박 대표는 2003년 투자 파트너로 LB인베스트먼트에 합류해 이 회사가 1조원 이상의 투자금을 운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올해 LB인베스트먼트는 연간 기준 역대 최대 규모로 투자를 집행했다. 올해 투자금은 2024억원으로 1년 전(1564억원)보다 29% 늘었다. 미술품 경매사 케이옥션에 300억원을 투자했다. 태블릿 기반 주문 플랫폼업체 티오더와 K팝 상거래 플랫폼 기업 케이타운포유에도 각각 100억원씩 투자했다. 스마트 기기용 디자인 소프트웨어 프로토파이를 개발한 스타트업 스튜디오씨드와 디지털 마케팅 통합 솔루션업체 아드리엘에는 50억원씩 투자했다. 박 대표는 “최근 투자 시장 위축에도 기술 기업 위주로 투자를 늘렸다”고 설명했다.

LB인베스트먼트는 올해에도 기존 투자 원칙을 고수했다. ‘선택과 집중’, ‘적극적인 후속 투자’, ‘장기 파트너십 유지’ 등이다. 철저한 시장 조사로 성장 가능성이 큰 산업을 전망하고, 해당 업종의 실력 있는 기업을 집중적으로 찾아내는 방식이다. 초기 투자(시리즈A) 단계에서 한번 인연을 맺은 기업은 계속 투자를 이어갔다. 의류 상거래업체 에이블리의 경우에는 세 번 투자하기도 했다. LB인베스트먼트가 비슷한 투자 규모의 다른 VC보다 투자 기업 수가 적은 이유다.

LB인베스트먼트는 내년에도 테크 기업 중심으로 투자 원칙을 지켜갈 계획이다. 박 대표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여러 분야의 융합이 일어나는 곳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예정”이라며 “해외 시장에서 확정성이 높은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기업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핵심 기술을 보유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스타트업도 발굴해 투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 VC의 역할이 내년에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작년에 VC들이 조성한 펀드가 많아 올해 스타트업 업계에 자금 투입이 이어졌다”며 “하지만 내년에는 자금 공급이 줄어 올해보다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VC 업계에서는 내년에는 경쟁력이 있는 스타트업만 살아남는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박 대표는 “투자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비가 올 때 우산을 씌워주는 것처럼 해당 업체가 돈이 필요할 때 투자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국내 스타트업이 해외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노려야 한다는 게 박 대표의 조언이다. 그는 “본투글로벌(Born To Global)이라는 말이 있듯이 회사 설립 때부터 해외 시장을 생각해야 한다”며 “글로벌 기업과 사업화 검증 사업(POC)을 진행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스타트업 정책에 대해서는 “스타트업 지원을 중소기업 육성, 일자리 창출 등의 목적보다는 한국 경제의 차세대 핵심 경쟁력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경제가 어려울 때 실리콘밸리 지역 스타트업의 역동성이 미국을 살린 것처럼 한국 스타트업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