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왼쪽부터), 소설가 박태원, 시인 김소운의 사진. 이번 춘추관 전시에서 원본이 처음 공개됐다.  /국립한국문학관 제공
시인 이상(왼쪽부터), 소설가 박태원, 시인 김소운의 사진. 이번 춘추관 전시에서 원본이 처음 공개됐다. /국립한국문학관 제공
‘별 헤는 밤’ ‘서시’ 등을 남긴 일제강점기 시인 윤동주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시인 백석의 시집 <사슴>을 갖는 것이었다. 책이 귀하던 때였다. 이 시집 초판본은 백석이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딱 100부만 제작했다. 가격은 2원. 다른 시집보다 두 배가량 비쌌다. 결국 윤동주는 <사슴>을 빌린 뒤 일일이 손으로 베껴 썼다.

윤동주가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사슴> 초판본을 22일부터 청와대 춘추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한국문학관은 21일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 청와대를 거닐다’ 특별전시 간담회를 열었다.

전시장에는 한국 현대문학을 풍성하게 만들어준 옛 문인들의 주요 작품과 관련 사진 등이 걸렸다. 소설가 염상섭의 대표작 <만세전>의 초판본, 현진건의 <조선의 얼굴> 초판본, 시인 이상이 표지를 꾸민 김기림의 <기상도> 초판본 등 희귀자료가 전시된다. 책 91점과 작가 초상 원화 4점, 사진 자료와 신문 자료 각 1점 등 총 97점이다.

백석의 시집 <사슴> 초판본.
백석의 시집 <사슴> 초판본.
이번 전시에서 원본이 처음 공개되는 사진도 있다. 이상과 <천변풍경>을 쓴 소설가 박태원, 시인이자 번역가인 김소운이 함께 찍은 흑백 사진으로 김 시인의 유족이 국립한국문학관에 기증했다. 권철호 국립한국문학관 기획전시부장은 “과거 신문 기사 등을 통해 이 사진이 알려지긴 했지만 촬영 장소가 불분명했다”며 “김소운 선생의 메모 덕분에 잡지 ‘아동세계’ 편집실이라는 점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초호화 필진이 총출동한 신문 지면도 확인할 수 있다. 소설가 이태준은 조선중앙일보 문예부장을 맡으면서 시인 이상과 소설가 박태원,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동시에 실었다. 이들은 당시 젊은 신인 작가였다. 이 중 이상의 시 ‘오감도’는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항의에 시달리기도 했다. 여성 화가이자 소설가 나혜석의 작품 세계도 만나볼 수 있다. 나혜석이 표지 그림을 그린 염상섭의 작품집 <견우화> 초판본 등이 함께 전시됐다.

문정희 국립한국문학관장은 전시 작가들이 주로 활동한 서촌과 북촌 일대에 대해 “수많은 작가와 화가가 활동한 창의력이 넘치는 곳”이라며 “시대를 풍미한 작가들의 옛 모습을 아름다운 청와대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게 국민에게 큰 위로를 주지 않겠느냐”고 했다.

전시는 내년 1월 16일까지. 사전 신청 없이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휴관일인 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관람할 수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