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이 사실상 금리 인상에 나서자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이고 채권 금리가 오르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였다.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10년물 국채금리 변동 폭을 기존 ±0.25%에서 ±0.5%로 확대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부인했지만, 시장은 장기간의 초저금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구전략으로 해석했다.

“일본은행이 크리스마스를 훔쳤다”(미국 월스트리트저널), “구로다 쇼크가 시작됐다”(블룸버그)는 보도가 나오는 등 주요 외신은 금융시장의 충격파를 전했다. 일본의 금리 인상은 고물가와 무역적자를 심화시킨 ‘나쁜 엔저’를 용인하는 데 한계에 봉착한 탓이다. 올초 달러당 115엔 수준이던 엔화는 지난 10월 32년 만에 최저치인 151엔대까지 떨어졌다. 수입 물가가 치솟아 10월 소비자물가가 40년 만에 처음으로 3.6%까지 올랐다. 무역적자가 이어지며 올해 42년 만에 경상적자가 기정사실화됐다. 일본의 금융정책 변화는 10년간 이어진 아베노믹스 청산 신호탄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가 ‘무제한 돈 풀기’에 나선 결과 국가부채 비율은 258%에 달하고 국채 발행 잔액은 1000조엔을 돌파했다.

내년 4월 구로다 총재 퇴임에 맞춰 일본이 본격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이 더욱 커질 수 있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일본은 미국에만 253조엔(약 2460조원)의 자산이 있는 세계 최대 순대외자산 보유국이다.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 주식·채권에 투자한 자금은 3조달러(약 3860조원)를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돈을 빌려 해외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회귀할 경우 주요국 국채금리 상승과 증시 하락이 불가피하다.

금융정책 변화 여파로 엔화 가치와 일본 장기 국채금리가 연달아 치솟고 닛케이225지수는 이틀 새 3% 넘는 하락세를 이어갔다. 통상 엔화 강세 땐 일본인 관광객이 늘고 수출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유리해지지만,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는 더 커진다. 일본의 금리 인상이 한국에 큰 충격을 주지 않을 수 있지만, 다중 위기 속에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잠시도 방심할 수 없다. ‘개미구멍이 둑을 무너뜨린다’는 속담을 되새기며 긴장을 풀지 말고 예의주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