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HR(인적자원) 업계에서 회자되는 신조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입니다. 퇴사에 가까운 마음가짐으로 ‘맡은 바 최소한의 일만 하겠다’는 워라밸(일과 휴식의 균형)을 추구하는 업무 태도를 칭하는 이 말은 따지고 보면 영 낯선 개념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새삼스레 이 신조어가 전 세계 20~30대에게 폭넓은 공감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윤경욱 스펙터 대표가 한경 긱스(Geeks)에 관련 글을 보내왔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조용한 퇴사라는 단어가 급속도로 확산된 시작점은 짧은 SNS 동영상이었다. 미국의 20대 소프트 엔지니어라고 알려진 한 남자는 동영상 속에서 지쳐 보이는 자세로 지하철 플랫폼을 바라보고 앉은 채로 ‘조용한 퇴사’에 대해 소개한다. 그는 자신의 17초짜리 영상 안에서 ‘조용한 퇴사’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며 "주어진 일 이상으로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며 끝맺음한다. 이 동영상은 단기간 내 350만 뷰 이상을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해외에서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조용한 퇴사’는 시작되고 있다. 한 국내 채용 플랫폼의 조사에 따르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0명 중 1명 꼴로 ‘조용한 퇴사’를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왜 조용히 퇴사할까?

워라밸이 가고 조용한 퇴사가 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해당 영상에서 말하는 조용한 퇴사의 의미는 기존에 거론되던 워라밸(혹은 워라밸을 추구하는 태도)의 의미와 궤를 분명하게 달리 한다. 워라밸, 즉 일과 삶의 균형 추구는 가정, 취미 생활로 대표되는 개인의 삶을 지향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는 일 외의 가치를 추구하고 확립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반면 조용한 퇴사는 지향이 아니라 '지양'을 목표로 한다. 노력하지 않기를 노력하고자 하는 결심에 방점을 두고 있다. 요컨대 조용한 퇴사를 택하는 이유는 피로와 체념이다. 더 이상 내적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 상태인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게다가 계속되는 마이너스 경기로 고용 시장의 침체는 끝을 점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내년 취업자 수 증가 폭은 1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코로나19 영향이 시작된 2020년 이후 최소치다. 내적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 상태에서 쉽사리 이직을 택하기 어려운 환경이 계속된다면 조용한 퇴사자의 증가세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적 동기 부여의 메커니즘

현대 심리학에서 활발하게 연구되는 외적 동기 부여 과정 이론 중 하나인 아담스의 공정성 이론에 따르면 노력과 직무의 만족도는 개인이 스스로 지각하는 업무 공정성에 따라 결정된다. 특히 업무 현장에 적용되는 조직 공정성은 분배, 절차, 상호작용의 3가지 요소로 나뉘는데, 업무 분배가 공정한지, 절차 공유 과정이 공정한지, 상호 간에 존중이 있는지가 그것이다.

문제는 공정의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개인이 맞닥뜨리고 받아들이는 수많은 상황들은 나름의 가치관과 성향이라는 거름망에 의해 공정하다는 기억과 그렇지 않다는 기억으로 남는다. 공정하지 않다는 기억이 쌓일수록 개인의 동기는 희박해지고, 마침내 더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는 고갈될 것이다.

연봉을 올려주면 될까?

성과에 따른 투명한 보상은 개인에게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절대적이거나 영구적일 수는 없다. 보상에 의한 동기 부여는 유효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하버드 의대 교수 산지브 초프라에 따르면 로또 당첨자가 처음에 대저택이나 화려한 자동차를 사들이며 느낀 행복감은 불과 3개월도 지속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뇌의 반응을 '쾌락적응' 혹은 '쾌락 쳇바퀴'라고 하는데 연봉을 아무리 인상해도 동기 부여의 기대 효과는 생각보다 길게 지속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금전적인 보상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을까?

동기 부여의 첫 단추 '컬처핏'

기업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개인이 자발적으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개인은 가치관과 성향에 따라 주관적인 ‘공정’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기업은 이를 개별로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체계화해야 한다. 업무 분배에 있어 어느 정도로 투명성을 확보해야 공정하다고 느끼는지, 성취감을 느끼는 기준이 절대적인지 상대적인지, 동료들과의 상호작용과 친밀도를 어느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는지,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환경과 도전적이고 변화무쌍한 환경 중 두각을 드러내는 환경은 어느 쪽인지, 관리자로서의 성장과 실무 능력 개발 중 어떤 경력을 원하는지 등등 스스로 끊임없이 더 잘 해내고 싶은 욕망을 발견하고 잘 해냈음을 원하는 형태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절한 기준과 환경을 제공하려면 '컬처핏' 테스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컬처핏을 확인하기 위해 기업이 체크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개개인의 성향과 우리 조직의 성향이 그것들이다. 하지만 조직의 성향은 정의하기 나름이라고 하더라도 수많은 개인의 성향을 확인하고 관리 체계에 녹여내기 위해서는 추산할 수 없을 정도의 비용과 인력이 투입될 것이다.

스펙터 고객사 설문 결과에 따르면 채용 시 공통적으로 파악하기를 희망하는 기본 성향의 종류만 최소 26건 이상이었다. 한두 번의 면접과 서류만으로 분류해내기에는 만만찮은 숫자다. 그러나 파악해내지 못하면 조직 부적응으로 인한 조기 퇴사 등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과 인력으로 최대한 파악하되 나머지는 느낌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채용 담당자들이 토로한 고충이다.

100번의 면접보다 1번의 '평판 조회'

기존의 구성원은 물론이고 채용을 진행하면서 만난 수많은 지원자들까지 면접이나 1 대 1 형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사람이 사람을 제대로 알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조차 파악하기 어려운데 사람을 스스로 열심히 움직이게 만드는 내밀한 욕구를 들여다보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함께 성장을 지향하는 건전한 조직 문화는 사람과 사람 간의 시너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을 파악하는 일은 조직 책임자의 영원한 숙제다.
사진=스펙터
사진=스펙터
스펙터의 '성향 키워드'는 이런 자체적인 니즈로 고안해 세상에 내놓게 된 서비스다. 제한된 시간 안에 제한된 관점으로 구두상 전달받은 정보들은 정보량이 적은 데다 휘발성이 강하다. 되도록 다양하고 믿을 만한 정보를 빠르게 수집해 한눈에 볼 수 있되, 정량적인 평가보다는 정성적인 평가가 가능하도록 설계한 것이 성향 키워드다. 성향 키워드 서비스 출시 이후 감사하게도 자사 인재상과의 일치율을 파악하거나 면접 전 심층 질문 설계를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있다는 고객사 피드백이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성향과 가치관을 고려해 채용한 입사자들의 '온보딩'은 수월할 수밖에 없다. 기업은 전보다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입사자에게 적절한 업무와 사수를 배정할 수 있고, 입사자는 존중받고 있다는 만족감과 신뢰감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된다. 한 고객사에서는 채용과 온보딩 과정 모두에 평판 정보를 활용하게 된 이후 수습 통과율이 기존의 200%를 상회한다고 전해왔다.

함께 성장하는 조직 문화

조용한 퇴사가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크나큰 손실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을 비난하며 도마 위에 올리는 일을 반복하면 감정의 골만 깊어질 뿐이다. 이제 누군가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할 차례다. 모두에게는 이해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이러한 욕구가 좌절되지 않도록 문제를 되짚어보는 것이 조용한 퇴사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기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조용한 퇴사'에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긱스]
윤경욱 | 스펙터 대표

첫 창업 때 300명 이상의 직원을 채용하고 그들의 이후 커리어를 살피면서 채용시장의 문제점을 발견했습니다. 능력은 있는데 자기 어필을 잘 못했던 사람이 생각보다 좋지 않은 회사에서 연봉을 너무 적게 받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반대로 다소 내실이 없음에도 자기 PR을 잘하는 사람은 좋은 회사에서 높은 연봉을 받고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채용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펙터를 창업하게 됐습니다. 스펙터 서비스를 통해 ‘공정한 채용 시장’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 스펙터 대표이사 (2020년 6월~현재)
△ 타운컴퍼니 대표이사 (2014~2020년)
△ 액센츄어 (2012~2014년)
△ 고려대학교 물리학 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