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록펠러의 '석유 담합 역설'…독과점이 오히려 유가 안정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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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의 종말은 없다
로버트 맥널리 지음
김나연 옮김 / 페이지2북스
444쪽│2만3000원
美에너지 전문가, 160년 원유 역사 분석
초기엔 연못 같은 웅덩이에서 원유 건져
1850년 땅속 원유 시추 성공에 대격변
석유회사 난립하자 유가 급등락 반복
로버트 맥널리 지음
김나연 옮김 / 페이지2북스
444쪽│2만3000원
美에너지 전문가, 160년 원유 역사 분석
초기엔 연못 같은 웅덩이에서 원유 건져
1850년 땅속 원유 시추 성공에 대격변
석유회사 난립하자 유가 급등락 반복
‘담합이 나쁘다’는 것은 경제 원리를 아는 이들에게 상식으로 통한다. 경쟁을 통한 가격 하락과 품질 향상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런데 <석유의 종말은 없다>는 상식을 깨는 주장을 편다. 원유 시장에서는 담합이 시장 안정을 가져왔다고, 더 나아가 담합이 없었다면 석유산업 자체가 개화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 로버트 맥널리는 1991년부터 30년 넘게 에너지 시장을 분석해온 업계 전문가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에너지 분야 고문을 맡기도 했다. 미국에서 2017년 출간된 이 책에서 그는 1850년부터 최근까지 약 160년간의 원유 시장 역사를 살펴본다. 원유산업을 ‘시장의 힘’에만 맡겨 놓았을 때 호황과 불황의 진폭은 커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최초의 석유 시추는 1858년 이뤄졌다. 그 전엔 연못 같은 웅덩이에서 원유를 건져냈다. 공급량이 매우 적어 부유한 사람들만 살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당시 원유 생산량은 연간 1183배럴이었는데 고래기름 생산량이 50만 배럴에 달했다.
그 비싼 원유를 땅에서 파낼 수 있다는 소식은 세상을 뒤흔들었다. ‘검은 황금’ 원유를 찾아 사람들이 앞다퉈 시추산업에 뛰어들었다. 원유를 정제하는 정제산업, 원유를 실어 나르는 운송산업도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겼다. 원유 공급은 너무 많거나, 너무 적었다. 그에 따라 유가는 극단적으로 요동쳤다. 신생기업이 우후죽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그때 존 D 록펠러가 등장했다.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농산물 유통회사에서 경리 일을 하던 그는 석유산업에 뛰어든 이후 한 가지를 확신했다. 정글과 같은 완전경쟁에서 벗어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담합과 인수합병(M&A)을 통해 세를 불려 나갔다. 그 과정에서 약탈적인 가격전쟁, 위협, 협박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1880년대 중반까지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원유 생산부터 정제, 유통에 이르기까지 석유산업의 모든 측면을 지배했다.
원유 가격도 안정을 찾았다. 스탠더드 오일이 시장을 지배하기 전 유가는 연평균 53% 출렁였다. 록펠러의 통치기 동안엔 변동률이 24%에 불과했다. 가격 자체도 낮아졌다. 록펠러는 높은 가격보다 안정적인 가격을 더 선호했다. 석유시장의 ‘날강도’라 불린 록펠러의 가격 담합이 ‘위장된 축복’으로 나타난 이유다.
담합이 유가 안정을 가져온 데에는 원유 시장의 특수성이 작용했다. 바로 원유 수요와 공급이 단기간에 잘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경제학 용어로 ‘수요의 가격 탄력성’과 ‘공급의 가격 탄력성’이라고 한다. 이상적인 시장이라면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늘어야 하지만 원유 시장에선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새로운 유정을 개발하는 데에만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 결과 가격이 균형을 회복하지 못하고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게 된다. 호황일 때 집중된 투자는 공급 과잉을, 불황일 때 억제된 투자는 공급 부족을 유발하기 쉽다.
1911년 스탠더드 오일이 34개 회사로 쪼개진 후 미국에서 원유 가격 변동성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세븐 시스터즈’라 불리는 세계 7대 석유사가 세계 원유 시장을 지배했을 땐 다시 유가가 안정을 찾았다.
이 체제는 1970년대 중동 국가들의 국유화 붐을 거치며 무너졌고, 세계 원유 시장을 관리하는 역할을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떠맡게 됐다. 하지만 OPEC은 말이 카르텔이지 세븐 시스터즈 때에 비해 단결력이 떨어졌다. 세븐 시스터즈 시기 연평균 3.6%에 불과했던 유가 변동률은 OPEC 통치 후 2007년까지 연 24.1%로 치솟았다. 그 후 등장한 셰일 오일은 유가 변동성을 더 높이는 원인이 됐다.
책은 단선적이고 단조롭긴 하지만 160년 원유 시장 역사를 잘 개괄하고 있다. 다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번역이다. 매끄럽지 않은 것을 넘어 뜻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문장이 많다. 원문과 대조해본 결과 아주 기본적인 단어와 문장에서조차 오역이 있었다. 이 책에 관심 있다면 원서를 읽을 것을 추천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저자 로버트 맥널리는 1991년부터 30년 넘게 에너지 시장을 분석해온 업계 전문가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에너지 분야 고문을 맡기도 했다. 미국에서 2017년 출간된 이 책에서 그는 1850년부터 최근까지 약 160년간의 원유 시장 역사를 살펴본다. 원유산업을 ‘시장의 힘’에만 맡겨 놓았을 때 호황과 불황의 진폭은 커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최초의 석유 시추는 1858년 이뤄졌다. 그 전엔 연못 같은 웅덩이에서 원유를 건져냈다. 공급량이 매우 적어 부유한 사람들만 살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당시 원유 생산량은 연간 1183배럴이었는데 고래기름 생산량이 50만 배럴에 달했다.
그 비싼 원유를 땅에서 파낼 수 있다는 소식은 세상을 뒤흔들었다. ‘검은 황금’ 원유를 찾아 사람들이 앞다퉈 시추산업에 뛰어들었다. 원유를 정제하는 정제산업, 원유를 실어 나르는 운송산업도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겼다. 원유 공급은 너무 많거나, 너무 적었다. 그에 따라 유가는 극단적으로 요동쳤다. 신생기업이 우후죽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그때 존 D 록펠러가 등장했다.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농산물 유통회사에서 경리 일을 하던 그는 석유산업에 뛰어든 이후 한 가지를 확신했다. 정글과 같은 완전경쟁에서 벗어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담합과 인수합병(M&A)을 통해 세를 불려 나갔다. 그 과정에서 약탈적인 가격전쟁, 위협, 협박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1880년대 중반까지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원유 생산부터 정제, 유통에 이르기까지 석유산업의 모든 측면을 지배했다.
원유 가격도 안정을 찾았다. 스탠더드 오일이 시장을 지배하기 전 유가는 연평균 53% 출렁였다. 록펠러의 통치기 동안엔 변동률이 24%에 불과했다. 가격 자체도 낮아졌다. 록펠러는 높은 가격보다 안정적인 가격을 더 선호했다. 석유시장의 ‘날강도’라 불린 록펠러의 가격 담합이 ‘위장된 축복’으로 나타난 이유다.
담합이 유가 안정을 가져온 데에는 원유 시장의 특수성이 작용했다. 바로 원유 수요와 공급이 단기간에 잘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경제학 용어로 ‘수요의 가격 탄력성’과 ‘공급의 가격 탄력성’이라고 한다. 이상적인 시장이라면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늘어야 하지만 원유 시장에선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새로운 유정을 개발하는 데에만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 결과 가격이 균형을 회복하지 못하고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게 된다. 호황일 때 집중된 투자는 공급 과잉을, 불황일 때 억제된 투자는 공급 부족을 유발하기 쉽다.
1911년 스탠더드 오일이 34개 회사로 쪼개진 후 미국에서 원유 가격 변동성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세븐 시스터즈’라 불리는 세계 7대 석유사가 세계 원유 시장을 지배했을 땐 다시 유가가 안정을 찾았다.
이 체제는 1970년대 중동 국가들의 국유화 붐을 거치며 무너졌고, 세계 원유 시장을 관리하는 역할을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떠맡게 됐다. 하지만 OPEC은 말이 카르텔이지 세븐 시스터즈 때에 비해 단결력이 떨어졌다. 세븐 시스터즈 시기 연평균 3.6%에 불과했던 유가 변동률은 OPEC 통치 후 2007년까지 연 24.1%로 치솟았다. 그 후 등장한 셰일 오일은 유가 변동성을 더 높이는 원인이 됐다.
책은 단선적이고 단조롭긴 하지만 160년 원유 시장 역사를 잘 개괄하고 있다. 다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번역이다. 매끄럽지 않은 것을 넘어 뜻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문장이 많다. 원문과 대조해본 결과 아주 기본적인 단어와 문장에서조차 오역이 있었다. 이 책에 관심 있다면 원서를 읽을 것을 추천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